대가야·금관가야 등 흔적 곳곳에…‘사라진’ 문명 드러내는 열쇠 역할
화려한 장신구·해양 교류 문물 등 주목…일부는 보물로 지정

보물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제공
보물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제공

한국의 16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 고분군’(Gaya Tumuli)은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 유적이다.

17일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과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등에 따르면우리나라에는 가야와 관련한 고분군이 780여 곳에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각 무덤은 대가야가 멸망하는 562년까지 꾸준히 조성돼 왔으며, 그 숫자가 수십만 기에 이른다.

가야고분군은 ‘사라진’ 가야 문명을 복원할 수 있는 주요한 유적이다.

무덤은 시대에 따라 형태나 조성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 안에 매장된 다양한 유물을 통해 당시 신분 질서와 사회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그간 알려진 고분군 7곳의 특징, 주요 출토 유물 등을 간략히 정리했다.

◇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5∼6세기 가야 북부 지역을 통합하면서 성장한 대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이다.

높은 구릉지 위에 고분군이 밀집해 조성돼 있는데, 연맹의 중심 세력으로서 대가야의 위상과 가야 연맹이 최전성기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일부 대형 무덤은 순장자를 함께 묻은 것으로 파악돼 지배층의 무덤이라는 점을알 수 있다.

백제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그릇, 일본 오키나와(沖繩) 산 야광 조개로 만든 국자 등은 당시 대가야의 활발한 대외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받는다.

가야 사회의 계층구조와 대내외 문물 교류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고분군이다.
1978년 32호분에서 나온 금동관은 대가야의 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유물로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됐다.

◇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아라가야의 왕과 귀족 무덤이 조성된 고분군이다.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와 ‘산’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이라는 의미가 있다.나지막한 구릉과 능선을 따라 꼭대기에는 대형 무덤이, 경사면에는중소형의 무덤이 모여 있다.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형 무덤 37기가 높은 곳에 모여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때 처음 조사했는데, 당시 봉토(封土·흙을 쌓아 올린 부분) 지름이 39.3m, 높이가 9.7m에 이르는 무덤이 확인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여러 출토 유물 가운데 말이산 45호분에서 나온 상형 도기 세트는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해 10월 보물로 지정된 유물로 정식 명칭은 ‘함안 말이산 45호분 출토 상형도기 일괄’이다.

집 모양 도기 2점, 사슴 모양 뿔잔 1점, 배 모양 도기 1점, 등잔 모양 도기 1점등으로 구성된 유물은 여러 점이 세트를 이뤄 출토된 데다 가야인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1∼5세기 가야 연맹을 구성했던 금관가야의 문화를 보여주는 고분 유적이다.

조사 결과 당시 지배집단이 묻혔으며 고인돌, 널무덤, 덧널무덤 등 여러 형태의무덤이 확인됐다.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정상부에는 4∼5세기 무덤이 모여 있어 시기적으로도 범위가 넓다.

대성동 고분 일대에서는 토기류와 철기류, 중국제 거울 등이 출토됐다.
특히 중국에서 들여온 청동거울, 북방에서 수입한 청동 솥 등은 당시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정치체가 중국, 가야, 일본 열도로 이어진 국제 교역에서 활발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1년 대성동 76호분에서 출토된 목걸이는 출토지와 출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석영질의 보석인 마노(瑪瑙)를 비롯해 수정, 유리 등 다양한 구슬 2천473점으로구성된 목걸이는 금관가야 유적에서 출토된 목걸이 중 가장 많은 수량으로 매우 희귀한 사례로 꼽힌다.

◇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창녕 일대에 분포한 고분군으로,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 묘역으로 추정된다.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100기가 넘는 무덤이 확인되며 출토 유물과 구조 양상을 볼 때 5∼6세기가 중심 연대일 것으로파악된다.

창녕 고분군은 최근 발굴 성과와 연구 조사 결과가 잇달아 나오는 유적이기도 하다.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63호분은 그동안 도굴의 피해를 보지 않아 무덤 축조 방식과 유물을 부장하는 양상이 온전하게 확인된 주요한 무덤이다.

이곳에서는 금동관, 구슬 목걸이, 은 허리띠 등 화려한 장신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교동 고분군에서는 무덤 출입구에 개를 매장한 사례가 확인되기도 했다.63호분에서도 개 3마리의 흔적이 나왔는데 무덤의 주인공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묻은 것으로 추정한다.

◇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5세기부터 가야 연맹의 유력한 해상 세력으로 떠오른 소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이다.

고성 무기산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구릉 주변에 크고 작은 무덤이 있다.전체적인 숫자는 적은 편이나, 무덤을 군집해서 조성해 온 가야 연맹의 특성을 보여준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1호 무덤은 지방의 우두머리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며, 흙을 쌓아 구릉처럼 만든 뒤 돌무덤 방을 만드는 가야 고유의 형식을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무덤에서는 소가야식 토기뿐 아니라 토기, 마구 등 교역품으로 쓰였을 유물이 다양하게 발견됐다.

학계에서는 백제와 가야, 일본 열도를 잇는 해양 교역의 창구였던 소가야의 특색이 잘 드러나는 유적으로 보기도 한다.고성 동외동 조개더미와 더불어 지역 내 중요한 유적으로 꼽힌다.

◇ 합천 옥전 고분군낙동강의 한 지류인 황강변 구릉에 있는 4∼6세기 전반의 가야 고분군이다.

무덤이 총 1천여 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지름이 20∼30m 정도인 18기가 한 지역에 밀집돼 있다.토기류, 철제 무기류, 갑옷 마구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이 고분군에서는 화려한 장식의 귀고리, 목걸이 등이 나와 주목받기도 했다.

옥전은 ‘구슬이 많이 나는 밭’이라는 뜻으로, ‘M2호분’으로 불리는 무덤에서는 2천여 개가 넘는 구슬이 나왔다.28호분과 M4호분, M6호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3쌍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옥전 고분군은 최고 수장급의 무덤에서만 나오는 유물이 망라한 유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M3호에서는 최고 지배자의 상징인 봉황무늬, 용무늬 등을 새긴 둥근 고리 큰 칼이 4자루 나왔는데, 출토지가 분명하고 역사적 가치도 커 삼국시대 금속 공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가야의 서쪽 영역과 그 범위를 엿볼 수 있는 유적으로, 운봉고원의 가야 정치체를 대표하는 고분이다.

지리산 줄기인 연비산에서 내려오는 언덕 능선을 따라 40여 기의 무덤이 조성돼있다.전북 지역에 있는 가야 고분군 중에서는 규모가 매우 큰 편이다.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무덤에서는 가야뿐 아니라 백제의 흔적도 곳곳에 묻어있다.
예를 들어 32호분에서는 백제 왕릉급 무덤에서만 나오는 청동거울, 백제계 금동신발 조각이 나온 바 있다.무덤의 축조 방식을 봐도 가야와 백제 고유의 특징이 함께 보이는 경우가 있다.

토착 세력, 가야, 백제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이 함께 출토돼 5∼6세기 전북 동부 지역의 고대사와 고대문화 연구에 있어 중요한 유적으로 꼽힌다.

호남 지역의 가야 유적으로서는 처음 사적으로 지정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