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호
나이 먹으니 알겠더군
평생 남의 무덤이나 짓다가
결국은 순장당할 팔자라는 거
키만 한 등짐 지고
뒷골목 종종거리다 사라진 사람들
발버둥 쳐야 벌금 고지서 하나 못 당하는 신세
차라리 네게 망명해
새로운 나라나 만들까
가난한 아이를 위한 헌법을 만들고
외로운 여자를 위한 군대를 훈련시킬까
남을 종으로 부리는 세상
깊은 해자 파고 높은 성을 쌓고
내 손으로 만든 왕관을 쓰고 옥좌에 앉아
모자란 자들이 다스리는
저 슬픈 나라를
아무 미련 없이
내려다볼까
“남을 종으로 부리는”인 이 나라에서, 시인도 종처럼 “순장당할 팔자”를 벗어날 수 없다. “벌금 고지서 하나 못 당하는” 신세인 시인. 하나 그는 “내 손으로 만든 왕관을” 쓰고 자신의 왕국-시집-을 가진 사람 아닌가. 남의 종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시인인 것, 하여 시인은 다른 나라로 망명가고 싶어 한다. “가난한 아이를 위한 헌법”이 세워진 정의로운 나라, 순박해서 모자라 보이는 자들이 다스리는 나라로.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