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훈

돌아가신 할머니가

할아버지 봉분 옆에 걸터앉아 있다

한 세대가 잡초 가시에 찔리며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식사가

몇 번이나 더 차려질지 궁금해한다

소나무가 된 동생에게 건넨

부모님 잘 모시라는 형의 말에

못 갚을 부채처럼 퍼지는 햇빛

나는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됐는데

준비된 사람은 있었을까

슬퍼 다행한 일뿐인 이들이

양갱이 포장을 까던 날

일가의 무덤 앞에 살아 있는 사람이 모인다. 그런데 위의 시에 따르면, 가족무덤 앞에는 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할아버지 봉분 옆에 걸터 앉아 있”는 것을 보라. 한편 죽은 이는 “소나무가 된 동생”처럼 무덤가의 자연물들로 변해 있기도 하다. 무덤 앞은 산 자와 죽은 자,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장소인 것, 이곳에서 ‘한 세대’의 산 자들은 “슬퍼 다행한” 기묘한 상황에 놓인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