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석

어깨 무겁다고

슬쩍

내려놓을 수도 없는 짐

말은 삼켜야 했다

세찬 바람 불고 갈 때마다

우우우 속울음 울어도

일탈할 수 없는 제자리

스스로 길이 되어

오늘도

꼿꼿하게 지키고 섰다

요즘은 전봇대를 보기 힘들다. 젊은 세대는 전봇대를 본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년에 다다른 이들이라면, 전봇대는 도시 속 일상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사물이었음을 잘 알 테다. 한데, 늘 전봇대를 대했으면서도 왜 이 시인처럼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까. 길목을 ‘제자리’에 “꼿꼿하게 지키고” 서 있는 전봇대의 삶의 무게를, 하여 “일탈할 수 없”어서 “스스로 길이 되어”야 하는 전봇대의 운명을 말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