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판식

아주 중요한 순간처럼 구름이 천천히 속력을 줄여

횡단보도 앞에 멈춰선다

이 세상이 누구의 기막힌 착상일지 생각해보다가 불안은

무상한 하늘의 깊이에 놀란다

사 분의 일쯤 뜯겨진 비닐봉투 속에서

슬픔과 절망이 과자 부스러기처럼 쏟아진다

스무 번쯤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동안 큰 가방 같은

창문이 쓸모없는 풍경을 방안으로 끌어들인다

혼자 하는 사랑은 고문이다

혼자 먹을 음식을 식탁보 위에 충분히 펼쳐놓으며

불안은 이 중요한 문제에 관해 골똘히 생각해보다가

통증이 있나 없나 손등을 포크로 살짝 찍어본다 (부분)

우리 현대인들이 살면서 느끼는 감정 중 많은 부분을 불안이 차지한다. 하나, 비록 불안이 생활에서는 쓸모없지만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자극하기도 한다. 하늘의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는 이 세상에 대해서, 그러나 구름 위의 하늘이 보여주는 지극한 무상함의 깊이에 대해서. 또는 “슬픔과 절망이” 쏟아지는 “혼자 하는 사랑”의 고통에 대해서, 그러나 고통이 가져오는 살아있음의 감각에 대해서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