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목

새벽을 기다리다

늦도록 지루해진 골목길에는

잠시 텅 빈 틈을 나고 담벼락이 높기도 하네

나는 닳고 닳은 골목길

자꾸만 떠나려는 너를

아귀가 맞지 않아 뻐근한 쪽문을 열고

놓아주네 휘어질 듯 졸던 담벼락이

문소리에 놀라 한 번 크게 소스라치고

깨어나네 일제히

起立하여 네가 가는 길을 가만히

열어주네 내 흐린 시선이

가 닿을 수 없는 골목의 저편

모퉁이를 돌다 말고 가던 길 돌아보던 네가

길 지우는 저녁마다 푸른 영혼으로 꺾어진

담벼락에 스미네

사랑하기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이별의 애상을 잔잔하게 표현한 위의 시를 만나니 마음이 뭉클해진다. ‘너’를 기다리며 살아온 ‘나’는 “자꾸만 떠나려는 너를” 기어이 ‘놓아’준다. ‘담벼락’이 이때의 ‘나’의 마음을 표현한다. ‘너’를 보내려고 연 문소리에 ‘담벼락’은 “소스라치고/깨어나” “길을 가만히 열어”주고, “골목의 저편”에서 “가던 길 돌아보던” 너의 마지막 이미지가 그 담벼락의 영혼에 푸르게 스며든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