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쿤체(전영애 옮김)

내 유년의 곡식 밭에서

밀은 여전히 밀이고, 호밀은 여전히 호밀이던 때,

추수를 끝낸 빈 밭에서

나는 어머니와 함께 이삭을 주웠다

그리고 낱말들을

낱말들은 까끄라기가

짧기도 하고 길기도 했다

현대인의 삶에서 말과 사물은 분리되어 있다. 사물로부터 떨어진 말이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고 조작되어 거짓이 판치는 세상이 현대다. 하나 말과 사물이 일치하는 행복한 때가 있었다. 유년 시절의 말이 그렇고 자연 속에서 노동할 때의 말이 그렇다. 이때의 “밀은 여전히 밀이”었으며, 그 낱말은 밀 하나하나의 다양한 ‘까끄라기’까지 담아내어 “짧기도 하고 길기도 했다”는 것. 시의 말이 그러한 말 아니겠는가.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