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온다. 마른 가뭄 아니련만 강우량이 미미하여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이었다. 7년 대한(大旱)에 비 아니 오는 날 없고, 7년 홍수에 해 아니 드는 날 없다는 옛말이 떠오는 날이 이어졌다. 그래, 노는 사람이야 흥겨울 터이나, 농사짓는 사람들은 얼마나 속이 탈까,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 나날이었다. 그러다 실로 오랜만에 풍족하게 비 내린다.

지난달 중순에 큰아들과 약속한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우리 집에 모여서 일박(一泊)하기로 한 것이다. 모임 하루 전날에 나는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에서 ‘문학자가 바라보는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대중강연을 한다. 광주와 전남대가 자랑하는 1980년대 대표 저항시인 김남주(1946∼1994)를 기념하는 공간에서 강연하는 일은 가슴 벅찬 노릇이다.

2019년 옹근 1년을 전남대 교환교수로 있던 때부터 ‘김남주 기념홀’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2019년 5월 3일 오후 5시에 열린 개관행사에 나는 1시간 일찍 도착하여 여러 상념에 젖어 들었다. 대학원 시절 김남주의 ‘조국은 하나다’ 시집을 읽고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던 추억이 생생하다. 그런 남주를 길러낸 전남대 인문대학에 들어선 추모공간!

어린이날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오시더니 오후에 접어들어 빗줄기가 굵어지는 것이다. 서울에서 9시 무렵 출발한 아들의 승용차는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화양(華陽)에 도착한다. 장성한 남녀 4인을 태운 소형 승용차에 동승(同乘)하여 고깃집으로 간다. 은성(殷盛)한 불빛 아래 따사로운 정담(情談)이 오가고 환한 웃음과 대화가 꽃을 피운다.

자리를 옮겨 ‘파안재(破顔齋)’에서 생선회로 함께하는 훈훈한 술자리는 늦은 시각까지 이어진다. 내일은 청춘들과 함께 우포늪에 가서 ‘따오기’ 비상하는 모습을 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튿날 기상하여 채비를 마치고 나니 창녕 오가는 길이 너무 멀다. 행선지(行先地)를 밀양의 영남루와 위양지로 바꿔 우중(雨中)에 출발한다.

밀양의 영남루는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한국의 3대 누각이라고 큰아들은 힘주어 말한다. 내리는 빗발 속에서 영남루 누각에는 오르지 못하고 아래에서 살펴볼 따름이다. 사명대사 동상과 무봉사(舞鳳寺)의 석조여래좌상을 뵙고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흉상과 생가를 구경하고 위양지로 옮아간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대구에서는 끝물인 이팝나무에 하얀 꽃송이가 탐스럽게 달릴 것이라 기대한 나는 ‘어이쿠’ 한다. 몇몇 작은 나무에만 꽃이 흐드러졌을 뿐, 거목에는 이제야 대궁이 얼굴을 내밀고 있던 터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면서 대화를 잇다가 길이 물에 잠긴 곳에 이른다. 황토물이 거리를 막아서는 바람에 다수가 걸음을 돌린다.

이런 작은 곳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는 밀양시청의 둔감함을 생각한다. 노자는 이것을 ‘견소왈명(見小曰明) 수유왈강(守柔曰强)’이라 했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밝다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이쯤에서 여행을 마감한다. 남산 자락에 구름이 자꾸만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