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 건강 지켜줄 음식에 관해 쓴 2권의 책

음식이 몸을 살찌운다면 책은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 /언스플래쉬
음식이 몸을 살찌운다면 책은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 /언스플래쉬

이른 아침과 밤에는 아직 춥고, 낮엔 벌써 여름이 온 듯 덥다. 이런 계절엔 감기에 걸리기도 쉽지만 입맛 역시 잃기 십상이다. ‘잔인한 달’ 4월엔 건강을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 육체의 건강을 위해선 좋은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신 건강을 챙기려면 뭘 해야 할까? 여기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수백수천의 선현(先賢)들이 때마다 강조했으니.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와 중국에서 날아온 짙은 황사에 콜록대는 기침을 참기 힘든 늦봄. 여기 육체적 건강을 지켜줄 음식에 관해 쓴 책 2권이 있다. 읽으면 정신적 풍요까지 선물 받을 수 있는. 이번 주말엔 이 책들을 읽음으로써 달아나버린 봄날의 입맛을 되찾아보면 어떨까?

“영화처럼 극적이던 삶이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뀐 건 세상엔 ‘나보다 강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안 뒤”

‘민어의 노래' 접한 한 시인은 “외로움에 기갈 든 영혼들의 뱃속을 든든히 채워준다”고 극찬하기도

“양반이 민어로 보신했다는 말은 근거 없어… 궁중 음식도 허구, 우리 시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음식”

 

김옥종 시집 ‘민어의 노래’.
김옥종 시집 ‘민어의 노래’.

▲요리 재료에서 건져 올린 맛있는 詩

-김옥종의 ‘민어의 노래’

문장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삶의 총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삶=문장’이라 할 수 있을 터. 그러니 당연지사 사람이 쓰는 문장에는 살아온 삶이 녹아들기 마련이다.

여기 커다란 손과 덩치를 가진 한 사내가 있다. 10대 땐 고향인 전남 신안과 학창시절을 보낸 목포에서 ‘소년 주먹’으로 유명했다. 자신의 완력을 과신했던 시절엔 한국인 최초로 K-1 파이터가 돼 일본 격투기 선수와 맞붙었다. 육체가 정신보다 빠르게 성장했던 사람 김옥종.

불같이 뜨겁고 영화처럼 극적이던 삶이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뀐 건 ‘세상엔 나보다 강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다.

그 무렵 그는 밤거리가 아닌 부엌에서 칼을 들었다. 요리사가 된 것이다. 채소를 다듬고, 생선을 말리고, 육수를 끓였다. 철부지 아들이 커가는 걸 말없이 지켜보던 어머니와 함께 조그만 식당을 운영한 것.

그리고 다시 2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김옥종은 이제 자신이 만들어내는 요리를 소재로 시를 쓴다. 40대 중반 문예지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온 그가 지천명(知天命)을 넘겨 출간한 첫 시집이 ‘민어의 노래’다.

자신이 만들고 손님이 먹는 김옥종의 요리 대부분은 이 책에서 시의 제목이 됐다. 그는 음식을 매개로 삶의 희비, 세상의 빛과 그림자, 인간의 본성을 해석해 낸다. 예를 들자면 이런 문장이다.

세월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

민어 몇 마리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위의 책 표제작 중 일부.

곧 다가올 초여름 제철 생선 민어를 요리하며 ‘세월’과 ‘끝나지 않는 기다림’을 떠올리는 사람. 이를 시인 외에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책장을 넘겨 아래 시를 보자.

나도 한 번씩은 조금 피가 흐르더라도

가슴을 열어

겨울 쪽볕에 한나절은 말리고 싶다

졸여낸 것은 생선이나 사람이나

깊어지는 건 매한가지 아니겠나.

-위의 책 중 ‘건정’ 전문.

전통 방식으로 말린 생선 ‘건정’은 김옥종이 사용하는 요리 재료 중 하나다. 바람과 햇살 아래서 말라가는 생선을 보며 사람 또한 깊어지기 위해선 곰삭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는 포착해낸다. 평소 ‘삶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문장이다.

오래 묵힌 간장 혹은, 잘 삭힌 홍어처럼 독자를 매혹하는 김옥종 시의 매력은 ‘주꾸미 초무침’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난다.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석쇠 받치고/잘 여문 도다리 자글자글 하얀 속살/애틋하게 올려놓고/노랑 잎 봄동 데쳐서 막걸리 식초에/주꾸미 뒹구는 호시절에는/생의 건너편에 있는 것들까지 부르고 잡다.’

맛있는 걸 앞에 두고도 함께 할 사람이 없어 외로워하는 현대인들, 결국은 자신만큼 사랑할 어떤 것도 찾지 못한 소시민들에게 김옥종은 “생의 건너편에 있는 것들까지도 모두 불러 모아 한상 잘 차려 먹이고 싶다”는 너른 마음 씀씀이를 보여준다.

‘민어의 노래’를 접한 시인 하나는 이 시집을 두고 “외로움에 기갈 든 영혼들의 뱃속을 든든히 채워준다”는 상찬을 얹었다.

기자는 여기에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다. “음식을 재료로 만들어낸 김옥종의 시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잊었던 인간의 따스한 체온을 되찾게 해준다”고.

 

황광해의 책 ‘한식을 위한 변명’.
황광해의 책 ‘한식을 위한 변명’.

▲뭘 알고 먹어야 더 맛있는 법

-황광해의 ‘한식을 위한 변명’

황광해는 음식과 요리 관련 글에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규합총서’ 등의 고문헌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돌올한 칼럼니스트다. 그의 문장은 짧고 군더더기가 없어 쉽고 편하게 읽힌다.

황광해와 함께 밥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그는 누구보다 음식과 식재료에 대해 많이 알지만 ‘지식’을 무기로 식탁에서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과장이 없고 명료한 사람이다. ‘한식을 위한 변명’은 음식평론가 황광해가 썼다. 첫 장을 펴면 열거된 소제목부터가 심상찮다.

‘보양식은 없다’

‘조선의 왕들은 사치스럽게 먹었다?’

‘먹음직스러운 사찰 음식은 없다’

‘궁중의 음식, 나라의 치욕이자 수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한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顚覆)시키는 제목들. 내용으로 들어가면 이 제목들이 황광해의 딱딱 끊어 쓰는 단문에 의해 부연된다.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의 여러 자료를 검토·인용해 설득력을 높이고, 의구심을 가질 독자를 위해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실제적 사례를 들려주는 것.

먼저 보양식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한식을 위한 변명’에서 황광해는 잘라 말한다. “보양식은 없다.” 이러한 단언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물음이 뒤따른다.

“아니, 보양식이 없다니요? 우리 조상들이 먹던 삼계탕, 장어, 민어, 개고기 등은 그럼 뭡니까?”

황광해가 답한다. “보양식에 관한 한 우리는 발전이 아닌 퇴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있지도 않았던 보양식을 억지로 만들어 먹고 있다”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보양식으로 가장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인 삼계탕이 원래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음이 기록된 ‘일성록’과 ‘몽경당일사’ 등을 인용한다. 또한 오늘날 삼계탕을 만들 때 사용되는 ‘영계(20여일 키운 어린 닭)’가 과거에는 사용된 적이 없음도 증명해낸다.

비싼 가격임에도 각광받는 민어회와 장어 요리 역시 조선시대엔 ‘보양식’과 거리가 멀었다는 게 황광해의 주장.

“양반이 민어로 보신했다는 말은 근거가 없다. 당시 민어 보신은 불가능했다. 양반들은 대부분 한양 도성이나 대도시에 살았다. 바닷가에서 민어를 옮기는 일은 불가능했다. 궁궐에서도 민어회를 먹거나 생민어로 탕을 끓였다는 기록은 없다.”

여기에 덧붙여 장어를 귀한 보양식으로 대접하는 세태는 일본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장어를 좋게 여기지 않았다. 그때 장어는 정체가 불분명한 녀석이었다”는 게 황광해의 설명이다.

세칭 ‘궁중요리’에 관한 황광해의 태도도 명확하다. “왕의 밥상, 궁중의 음식은 허구다. 왕의 밥상은 없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음식”이라는 것.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에 근거해 ‘왕의 밥상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펼친다.

‘궁중음식을 전승한 기능보유자’ 또는 ‘조선 왕조의 마지막 상궁’으로 불리는 한희순에 대한 황광해의 인물평은 가혹하게 보일 정도다. 요약하면 이렇다.

‘한희순이 고종과 순종,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의 밥상을 책임졌다는 건 엉터리 소설이다. 무너진 왕조라도 왕실의 식사는 남자, 숙수의 몫이었다. 어린 여자 나인이 밥상을 책임졌다는 것은 유교적 사회질서 구조와 조선의 궁궐을 모르니 하는 소리다. 한희순은 고종 시대엔 제대로 일을 할 연차도 되지 않았다.’

황광해의 문장과 주장은 열광과 비난을 동시에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 또한 책을 읽는 재미.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해 ‘한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갈 것인지는 ‘한식을 위한 변명’을 읽은 독자들의 몫이다.

/홍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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