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배운 첫 번째 노래가 민중가요 ‘꽃다지’와 동물원의 ‘거리에서’였다. 저녁 어스름 무렵이면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면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하고 시작하는 ‘거리에서’가 시나브로 입안을 맴돌았다. 처연하고 서정적이며 내장(內臟) 깊숙한 곳을 푹, 찔러오는 가사와 음조가 날마다 흔들리던 나의 내면을 후려갈겼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이다.

유학 나가기 전에 나는 적어도 30곡 정도의 민중가요를 알고 있었다. 쾰른에서 첫 번째 어학 과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작은 잔치(kleine Fete)를 했을 때 ‘이 산하에’를 부른 일이 기억난다. 러시아 민요 세 곡을 알던 청춘의 빛나던 시절을 함께했던 노래 가운데 하나가 ‘이 산하에’였다. 야경꾼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늦은 밤 도서관에서 귀가할 때도, 뭔가 애잔하고 답답할 때도 길동무가 돼주었던 노래가 ‘이 산하에’였다.

그런데 ‘꽃다지’라는 낯선 노래가 주는 정감은 색다른 것이었다. 강력하고 웅혼하며 유장(悠長)한 노래들과 결이 다른, 애틋하고 섬세하며 가슴을 아프게 저미는 노래였다.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나 오늘 밤 캄캄한 창살 안에 몸 뒤척일 힘조차 없어라~’ 무력감과 무기력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나약한 자아를 고백하는 민중가요라니! 그래서일까?! 어렵지 않게 서둘러서 노래를 배우고 익혔다.

세월은 물처럼 흐르고 사라져 자취도 없는데, 어제오늘은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언론은 ‘꽃샘추위’라 규정한다. 모든 꽃이 일제히 피어난 ‘백화제방(百花齊放)’의 통렬한 3월도 지났는데 느닷없는 꽃샘추위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뒷집 할머니는 윤이월로 인해 봄이 늦고 늦추위 있을 거라 했는데, 요즘 일기는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인간이 지구별을 끝없이 착취한 결과로 자연파괴(自然破壞), 기후변화, 환경위기가 초래된 것 아닌가?!

마당에는 올해 꽃다지 풍년이다. 작년에 군데군데 앙증맞은 자태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기를 거듭한 꽃다지였다. 그랬던 녀석들이 마당을 점령할 태세다. 꽃다지와 함께 새로 주둔한 제비꽃들의 위세도 대단하다. 작년에 쑥과 우슬, 민들레를 정리하고 난 후 안심한 게 화근이다. 꽃집 주인 말로는 한 송이 꽃이 피어나 떨어지면 그 30배에 이르는 꽃씨가 퍼져나가 군락을 이룬다고 한다.

한편으로 무척 반갑지만, 다른 한편으론 저 많은 녀석을 어찌 감당하리, 하는 걱정도 찾아온다. 마당을 절반 넘게 차지했던 사초(조릿대)와 쑥, 민들레의 추억이 아직도 삼삼하다. 잔디 심은 마당을 건사하노라면 거의 날마다 호미로 불원초(不願草)와 전쟁해야 한다. 풀과 싸워서 이기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잔디 형상을 유지하는 것이 게으르지 않은 주인 행색이라 수고로운 노동을 아껴서는 아니 된다.

입김마저 하얗게 나가는 아침마당에서 때늦은 한기(寒氣)와 만나면서 인생살이 곳곳에서 나를 덮쳐왔던 크고 작은 시련을 생각한다. 봄꽃 흐드러진 봄날의 정한(情恨)이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