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책이란 읽을 때마다 달리 다가온다. 스무 살 무렵 읽은 소설이 나이 들어 다시 읽을라치면 전혀 새롭게 읽힌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예외가 아니다. 학부 시절 나는 ‘어린 왕자’와 ‘윤동주 평전’, 시인들의 시집을 끼고 살았다. 그야말로 ‘문청(文靑)’ 흉내를 내고 살았던 게다. 문학적 재능도 강고한 끈기도 없던 나는 시인의 길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러시아 문학 공부 대열에 들어서고 말았다.

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았기로 영어판 ‘어린 왕자’를 밑줄 그어가며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얼마 전 책방에 ‘어린 왕자’를 주문해 단숨에 읽었다. 모자와 어린 왕자 그림이 웃으며 다가왔다. 아무리 보아도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보아뱀을 연상할 수 없는 나는 천상 상상력을 잃어버린 천덕꾸러기 어른인가 보다. 하기야 숫자를 사랑하고, 숫자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 같은 인간이 순수 동심의 세계를 꿈꾸기란 불가능한 노릇이리라.

‘어린 왕자’를 읽다가 작년 8월에 유명(幽明)을 달리한 이상엽 울산대 철학과 교수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 교수의 맑고 투명한 웃음소리가 필시 어린 왕자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후를 생각하지 않는 웃음, 앞과 뒤를 재지 않는 흔쾌하고 여유로우며 당당한 웃음. 약간 높은 어조의 전염성 강한 웃음소리를 가졌던 이 교수가 생각난다. 삶에 허여된 시간의 순차성이 무의미해질 때면 잠시 막막해지곤 한다.

많은 이가 ‘어린 왕자’의 기막힌 구절에서 삶의 위로나 작은 등불을 찾았을 것이다. B612 소행성에서 날아온 어린 왕자는 지구별에 오기 전에 여섯 개의 별에 들른다. 거기서 그는 왕과 사업가, 술주정뱅이와 가로등 켜는 사람, 허영심이 강한 남자와 지리학자를 만난다. 권력과 돈, 알코올과 무의미한 노동, 자만과 학식으로 무장한 어른을 만난 왕자는 상심한다. 지리학자가 추천한 지구별에 1년 동안 머물던 왕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비행사다.

왜 그들은 여섯 개의 별에서 하나같이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돈과 권력과 노동과 학문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작가는 묻는다. 지금 지구에는 80억 인간이 각자의 소행성에 유폐된 채 홀로 살아간다. 그래서 사막에서는 조금 외롭지만,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야 하는 구절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왕자가 여우와 뱀을 만나서 지혜와 신생(新生)을 얻고 자신이 떠나온 별로 돌아갔음은 다행한 일이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아름다운 몇 구절을 소개한다. “어른도 처음엔 어린이였어.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단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지.”

우리는 자연과 담을 쌓고 21세기 20년대를 살아간다. 오늘날 자연은 어린이들이 ‘체험’하는 대상으로 전락했고, 밤하늘의 별과 달은 망각(忘却)된 지 오래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만연한 사회지만 별을 헤아리고 별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