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3월 8일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의 만화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230만 관객을 돌파했다. 코로나 3년 동안 새로 만들어진 풍속도 가운데 하나가 영화관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예전과 비교해보면 영화 관객이 확연히 줄었다. 천만 관객 영화가 드물지 않은 영화판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비싼 입장료다. 조조할인을 받아야 1만1천원이니, 젊은 세대에게는 적잖게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이런 형편에 ‘스즈메의 문단속’이 순항하고 있는 게다. 영화는 이른바 ‘로드무비’ 형식을 취하면서 재난 드라마와 사랑 이야기까지 동반한다. 그렇다고 구성이나 사건 전개, 갈등과 해결이 밋밋하지 않다. 한 마디로 신카이 마코토의 저력을 어김없이 보여주는 역작이다. 규슈에서 시작하여 시코쿠의 에히메를 지나 혼슈의 고베와 동경에 이르는 장정(長程)이 지루하지 않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강도 7 이상의 지진이 지나간 곳이다.

일본을 괴롭히는 전통적인 자연재해는 화산 폭발, 태풍 그리고 지진이다. 태곳적부터 이런 자연재해에 익숙해진 일본을 우리는 매뉴얼 사회라 부른다.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전해주는 재난 공화국 일본. 하지만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은 망연자실 우왕좌왕 뒤죽박죽, 문자 그대로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 하토야마 유키오의 민주당 정권이 아베 신조의 자민당으로 넘어갔다.

12년 세월이 흐른 2023년 3월 일본은 대지진을 얼마나 극복하고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이런 정황을 배경에 두고 ‘지금과 여기’의 일본을 보여준다. 평범한 여고생 스즈메와 그녀가 등굣길에서 마주친 대학생 소타가 자연재해와 대결하는 장면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문단속’은 도둑이나 강도를 막아내는 작은 범주의 노동이지만, 영화에서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그래서 조금은 낯선 제목이다.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오키나와로 이어지는 일본 열도는 화산과 지진 활동이 활성화되어 있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한다. 언제 어디서든 지진과 화산이 작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감독의 설정이 흥미로운 게다. 청춘남녀가 재난의 한복판으로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영웅성을 사랑의 당의정(糖衣錠)으로 달콤하게 포장한 ‘스즈메의 문단속’. 그래서 젊은 관객들의 발길이 영화관에 이어지고 있다.

무기력과 무능력, 무책임과 무관심으로 표현되는 현대 일본 청년들의 모습과 딴판인 남녀 주인공의 사유와 행동이 가슴을 따사롭게 적신다.

만약 일본의 청춘들이 저런 양태로 성장·변화·발전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춘의 힘은 도전과 모험 그리고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는 헤밍웨이의 장편소설 ‘노인과 바다’의 구절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영화가 막을 내릴 즈음 한국 청춘들의 얼굴과 생각과 행동이 어른거린다. 과연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그들의 내면 풍경과 장쾌한 미래기획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