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봄이 오고 있다. 작년보다 월등히 추웠던 겨울이 지난주 금요일 오후를 기점으로 봄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갔다. 목요일 오전 영하 7℃, 금요일 오전 영하 5℃를 끝으로 청도는 앞으로 영하의 아침을 만나기 힘들어질 모양이다. 하지만 겨울의 여파는 곳곳에 남아있다. 작년 이맘때에는 홍매가 졌을 터인데, 올해는 아직도 봉오리 상태로 몸을 닫아걸고 있다. 봄의 첫 번째 전령인 영춘화(迎春化)가 이제야 노란 꽃송이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대구 동촌 유원지 전봇대 아래 하얀 냉이꽃이 앙증맞게 피어났다. 도심의 소음과 매연과 인총(人叢)들의 무관심을 이겨내고 청정하게 피어난 냉이꽃에 마음이 짠해진다. 대구 문화방송국 주변 욱수천에 뿌리내리고 서 있는 버드나무에도 도톰하게 꽃눈이 올라오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선화 꽃대가 시나브로 키 자람을 하고, 원추리와 루드베키아, 봄까치꽃도 여기저기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바야흐로 봄이 흐드러질 참이다.

길을 걷다가 나무에 손을 대본다. 겨우내 차가웠던 나무에도 조금씩 온기가 느껴진다. 창천(蒼天)의 구름도 살이 붙어 통통하다. 저녁 7시나 되어야 캄캄해지는 사위(四圍)를 뚫고 금성과 목성이 천상에서 유희하는 장면은 경이롭다. 그것을 지켜보며 증인 구실을 하는 하얀 반달이 어느 참엔가 노랗게 색깔을 바꾼다. 겨우내 고요했던 지붕에 참새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조류의 소음과 추함은 여전하다.

밤하늘의 별들이 찬란하게 빛났던 차고 아름다운 시절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떠나가고 있다. 모든 떠나는 것에 동반하는 만가(輓歌)에는 슬픔과 아쉬움이 깃들기 마련이지만, 겨울과 봄의 교체에는 그런 징후가 없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생명의 약동과 환희가 대지와 하늘과 인간들의 아수라판에 범람할 것이기 때문이다. 10월 말까지 이어질 뭇 생명의 환호작약과 괄목상대와 욱일승천의 기세에 미소(微小)한 인간의 개입이 불가능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문자 조합은 자연보호(自然保護)다!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겠다니! 마치 세 살짜리 천둥벌거숭이가 부모를 부양하고 보호하겠다고 나선 것과 다를 바 없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과 지난 2월 6일 터키와 시리아를 덮친 지진을 생각해보라. 인간은 자연을 보호할 수도 없고, 자연은 인간의 보호를 바라지 않는다. 인간은 수많은 생명과 어울려 살아가는 미미한 존재일 따름이다.

자본주의와 과학주의가 낳은 기형적인 괴물인 근대의 본질 가운데 하나가 자연 정복이다. 과학에 터를 둔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오만에 빠진 인간은 ‘계몽’이란 허울 아래 자연을 인간의 하위에 자리하도록 했다. 그것이 불러온 파괴적인 양상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기고만장(氣高萬丈)해진 일부 괴짜 사내들은 화성 탐사와 인간의 달 이주 계획을 서둘러야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정말로 희화적인 지구의 풍경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환경부가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에 동의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개발이익과 업적을 챙기려는 시커먼 욕망의 무리가 거악을 만들어낼 태세다. 우리의 봄과 자연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