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으로 삶의 터전 무너진 주민 들 "무작정 탈출한다"
'길목' 아다나 공항, 삶의 터전 무너진 이들 밀려들며 '피란민 수용소' 방불
터키항공, '이재민 구호' 국내 항공편 무상 제공…승객들 바닥에 이불 깐 채 밤 지새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아다나공항에서 지진 피해를 입은 지역의 국민들이 이스탄불과 앙카라 등으로 떠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터키항공은 이번 지진 피해 지역의 국민들을 위한 구호 목적으로 당분간 타 지역으로 하는 국내선 항공기 티켓을 무료로 제공한다. /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아다나공항에서 지진 피해를 입은 지역의 국민들이 이스탄불과 앙카라 등으로 떠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터키항공은 이번 지진 피해 지역의 국민들을 위한 구호 목적으로 당분간 타 지역으로 하는 국내선 항공기 티켓을 무료로 제공한다. /연합뉴스

강진으로 삶의 터전이 무너진 튀르키예 이재민들의 고통은 전쟁과도 같은 피난길까지 이어졌다.

    전날 밤 안타키아를 출발, 11일(현지시간) 도착한 튀르키예 남부 아다나주의 아다나 공항에는 입구 검색대를 통과하려는 시민들의 행렬이 오전 내내 수십m 이상 길게 늘어졌다.

    아다나는 지진 피해가 극심한 남동부 가지안테프에서 직선거리로 200㎞가량 서쪽에 위치해 큰 피해는 면한 곳으로, 이스탄불, 앙카라 등으로 향할 수 있는 길목이다.

    1차로 공항 입구 검색대를 통과하자 표를 구하기 위하려는 인파가 항공사 창구에 다시 한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터키항공이 이재민 구호를 위해 피해 지역을 떠나려는 모든 이들에게 국내 항공편을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피란민들이 공항으로 몰려든 것이다.

    아다나 공항에도 매시간 비행기가 뜰 정도로 항공편을 늘렸지만, 끊임없이 몰려드는 이재민들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듯했다.

    취재진 역시 항공편 예매에 실패했지만, 현장에서 나눠주는 표를 간신히 받을 수 있었다.

    공항 안은 표를 받고 대기하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벤치 자리는 꽉 차 있었고, 벽이란 벽마다 사람들이 봇짐과 캐리어에 기대어 하염없이 비행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승객들이 담요와 모포를 펼친 채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청하고 있었고, 기다림에 지친 어린 아이들이 보채거나 칭얼대는 것을 달래는 부모들 역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오랜 기다림에 지친 듯 아예 바닥에 침낭을 펼치고 들어가 숙면을 취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한 쪽 구석에서는 8개월짜리 갓난아기가 담요를 덮은 채 세상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기 어머니인 사반다 씨는 전날 밤 자정에 도착한 뒤 12시간 째 비행기를 기다렸지만, 여전히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형편이었다. 8개월짜리 아기 말고도 2살과 4살, 5살까지 모두 4명의 아이와 함께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고 했다.

    사반다 씨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다"며 "그래도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비행기를 탈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피란민들이 공항에 도착하지 못한 채 거대한 주차장이 돼 버린 도로에 갇힌 형편이다.

    제랄 씨는 아다나 공항까지 평소 같으면 차로 2시간이 걸릴 거리를 이번에는 5시간이 걸려와 왔다고 상황을 전했다.

    사반다 씨는 같은 거리를 9시간이나 걸려서 왔다고 했다.

    도시와 마을 전부가 파괴되고, 수색과 구조 작업이 진행되면서 도로 곳곳이 막힌 데다 응급차와 소방차, 중장비가 피란 행렬과 뒤엉키면서 피해 지역 일대가 극심한 교통 혼잡을 빚은 탓이다.

    우여곡절 끝에 공항을 빠져나간다고 해도 그 다음이 걱정이다.

    피란민들은 대부분 친척이나 지인 집에서 일단 지낼 것이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생계 대책은 준비된 이들이 거의 없었다.

    이에 따라 노인과 여성, 아이들은 다른 지역으로 피란을 가더라도 남성들은 고향에 남아 생계 터전을 지키고 복구 작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사반다 씨도 고향에 홀로 두고 온 남편 걱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제랄 씨는 아이들만 이스탄불 친지 집에 데려다준 뒤 자신은 다시 하타이의 집으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향은 나의 영혼이 연결된 곳이다. 절대 떠날 수 없다. 끝까지 내 집과 고향을 지키겠다"고 했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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