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미

살구나무 그림자에 누군가의 마음이 어룽댄다

꽃 진 살구나무에 봄의 정신이 있다고

믿는다

옛사람처럼

살구나무 그림자에 내 다리를 얹어본다

바람은 내 그림자만 떠내어 흔든다

흔들리지 않는 살구나무 가지에

봄의 정신이 있다 (부분)

시인은 살구나무 그림자에 자신의 “다리를 얹”는다. 그러자 “바람은 내 그림자만 떠내어 흔”드는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흔들리는 것은 그림자이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시인에게 일깨운다는 듯이. 이 일깨움에 따라 시인은 곧이어 ‘봄의 정신’은 “흔들리지 않는 살구나무 가지에” 있다고 선언하듯이 말한다. 모든 꽃이, 아름다움이 다 져버렸지만, 그 빈 가지에는 흔들리지 않는 봄의 정신이 현현하고 있다는 선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