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물가에 혼자 앉아서

이제 그만 고즈넉 저물어야지

더러는 기우는 햇빛이 더욱 붉다고

불끈, 말하고 싶을 때에도

쉬, 표시나지 않게 기울어야지

누군가의 등 뒤에서

내가 이윽고 캄캄해지면

아무렴, 그게 바로 사랑이겠지

가끔은 그리운 사람을 위해

관솔 같은 상처를 태워

꽃불 밝히자 스스로 캄캄해져서

흐르는 물로 억센 연장을 씻고

바람에 맡겨 젖은 이마를 말리고

어디쯤일까 지금

저녁강 돌아눕는 소리

저물면 조용히 어두워지도록

기울면 가만히 허물어지도록

아무렴, 그냥 두자 무심하게

조금씩 더 낮아지면서

상처를 태워 마지막 불꽃들을 발산하며 조금씩 캄캄해지는, 노년에 다다른 자의 사랑. 이러한 사랑이 더 붉고 뜨거울 수 있다. 시인은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랑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것이 사랑인가? 허물어지고 캄캄해지면서도, 그는 여전히 누군가의 등 뒤에 그림자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게 그 누군가를 뒤에서 받쳐주는 일, 그것이 사랑임을 저물녘에 도달한 시인은 깨닫게 된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