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매화는 방 안에서 피고

바람에는 눈이 내리고

어머니는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바닥에 엎드려 시를 읽고 있었다

누이야,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한편 쓰면

어머니가 좋아하실 것 같았다

가출한 아버지는 삼십년 넘게 돌아오지 않았고

그래서 어머니는 딸을 낳지 못했다

아내는 무채를 썰고 있었다

도마 위로 눈 내리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생체와 들기름으로 볶은 뭇국을 좋아했다

매화는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하였다

동생들은 관절염에는 수술이 최고라고 말했고

저릿저릿한 형광등이 매화의 환부를 내려다보았고

환부가 우리를 키웠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부분)

매화는 어머니와 동일화된 객관적 상관물이다. 천장에 달린 형광등은 ‘저릿저릿’하게 “매화의 환부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방안에는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삶이 퍼져나가는 듯하다. 매화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와 동일화되는 하얀 눈은 아내가 무채를 썰고 있는 도마소리가 되어 방안에도 내린다. 이 어머니의 환부와 같은 방안에서 시인과 동생들은 자랐던 것, 그래서 “환부가 우리를 키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