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페모리’
박필우 지음·홍익출판 펴냄
산문집

“인간은 살려고 태어났지 죽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그날까지 악착같이 살아갈 거라 어금니를 물어봅니다.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자석에 끌려가듯 어차피 죽을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 박필우 수필집 ‘까르페 모리’ 중에서

산문집 ‘까르페 모리’(홍익출판)는 대구의 스토리텔링 작가이자 답사작가, 수필가인 박필우 작가가 지난 2020년 수필집 ‘심행수묵’ 이후 새롭게 선보이는 책이다. 역사의 현장과 문화재 답사로 오랜 시간을 보낸 저자는 현재 스토리텔링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이 책 표제 ‘까르페 모리’는 ‘까르페 디엠(이 순간에 충실하라)’과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의 합성어다. 삶을 성실하게 즐기되 인생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유한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인생은 유한하기에 아름답다는 뜻을 은연중 내포하고 있다. 농익어가는 삶의 후반기에서 느낀 소소한 일상, 꾸준한 사색에서 얻은 단어와 문장을 따르다 보면 ‘인생 앞에서 겸손해야만 한다’는 저자의 생활적 사고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수필집, 혹은 산문집도 아닌 잡문집일까? 책을 펼쳐 보면 금방 작가 의도를 알 수 있다. 짧고 긴 글, 낙서 같은 시를 등장시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투박한 그림까지 덧칠했으니 저자 의도대로 잡문집이 맞을 듯하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눴다. ‘어린 나’가 제삼자가 되기도 하고, 어머니 아버지, 벗 등 저자가 살아오면서 부대낀 인물들 사연, 역사, 하늘과 별을 비롯해 지나간 이야기를 쉽게 풀어놓았다. 또 저자 자신이 노년을 기다리며 노년을 바라보고, 최근 살아오면서 새롭게 알아가며 느꼈던 일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고뇌해 건져 올린 생각을 담담하게, 혹은 즐겁게 들려주고 있다. 결국에는 팍팍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에서 꿈과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저자 의지가 담겼다.

1부 과거진행형 ‘쉼’에서 작가가 직접 겪었던 어린 시절 추억부터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고 느꼈던 길고 짧은 단상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놓았다.

2부 현재진행형 ‘까르페 모리’, 즉 이 책의 표제와 같다. 성실하게 현재를 살아가되 죽음을 기억하라는 겸손과 진실이 담겨 있다.

박필우 작가
박필우 작가

3부 미래진행형 ‘역사를 따라 길을 걷다’는 말 그대로 전문 답사작가가 쓴 역사기행수필이다. ‘역사는 미래 거울’이라는 의미다. 중국 시안부터 우루무치까지 실크로드를 비롯해 터키 이스탄불, 체코 프라하,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 빈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역사의 현장은 물론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화마에 휩싸였던 코소보 프리슈티나,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보스니아 사라예보·모스타르 등을 두 번에 걸쳐 답사한 후 폭력의 사연을 담았다. 폭넓은 시선으로 답사작가만이 낼 수 있는 여수를 온전히 풍기는데 역사의 현장에서 보고 느낀 역사수필의 신선함이 있다. 역사를 비딱하게 보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를 즐기면서 인물과 사연을 막힘없이 풀어내 앎에 즐거움을 선사한다.

전체를 보면 다듬어지지 않아 세공되지 않은 원석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짧은 문장과 긴 호흡이 어우러지면서 특유의 다이나믹한 단어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거침없는 문장과 필력이 곳곳에서 드러나 따뜻한 이야기마저 속도감 있게 읽힌다. 중간중간 호흡을 끊어 비워둠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은 수묵화 같은 느낌마저 든다.

적절하게 어우러진 사진과 함께, 빼어난 솜씨는 아니지만 다소 투박한 그림이 분위기를 더해 시선을 붙들어 맨다.

박필우 작가는 예천 출신으로 ‘심행수묵’, ‘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 ‘유배지에서 유배객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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