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바다 위 찬란한 신안

안좌도 퍼플교.
안좌도 퍼플교.

전라남도 신안군은 바다 위에 1천25개 섬이 별처럼 무수히 떠 있는 섬 천국이다. 우리나라 전체 섬의 25%와 갯벌 대부분이 신안에 있다. 섬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며 섬 자체가 천연기념물이기도 한 보물이 많은 곳이다.

바다에 흩어진 섬들은 2019년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개통되면서 목포와 연결돼 육지가 됐다. 바다의 오지로 불렸던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같은 섬들을 차량으로 쉽게 갈 수 있다. 땅이 얼어붙고 매운바람이 불어오는 겨울,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바다와 너른 갯벌,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가 매력적인 섬들이 수 놓인 신안으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목포와 연결된 천사대교 따라 차량 이동 가능
4계절 아름다운 보랏빛 ‘퍼플섬’ 등 섬과 갯벌
해안 둘레길 섬마을… 발길 닿는 곳마다 ‘신비’

 

암태도 동백파마버리 벽화.
암태도 동백파마버리 벽화.

△동백 파마머리 부부 벽화가 익살스러운 암태도

흩어진 돌이 많고 바위가 병풍처럼 섬을 둘러싸고 있어 이름 붙은 암태도는 1923년 8월부터 1924년 8월까지 소작농들이 항쟁을 벌인 ‘암태도 소작쟁의’로 유명한 곳이다. 일제강점기 암태도 소작 농민들에게 8할의 소작료를 징수한 대지주와 이를 비호하는 일제에 저항한 대표적인 농민항쟁이다. 소작인 400~500명이 배를 타고 목포로 나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을 점거하며 저항했다. 일본 경찰은 농민대표들을 구속했다. 소작농들이 암태소작인회를 조직해 투쟁하며 소작료를 4할로 내리게 하고, 농민대표들도 풀려나게 한 항쟁의 역사가 깃든 섬이다.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이 세워진 암태도는 길가 담장에 그려진 벽화 하나로 관광 명소가 됐다. 기동 삼거리의 노부부가 사는 집 담장에 부부의 얼굴이 벽에 그려져 있고 담장 위로 애기동백이 마치 파마머리를 한 듯 동그랗게 피어오른다.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

동백꽃 피는 겨울, ‘동백 파마 벽화’에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 위로 붉은 꽃이 화려하게 부풀어 오른다. 그림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벽화는 신안군수의 아이디어로 할머니의 얼굴만 먼저 그렸다. 할머니는 담장에 얼굴이 크게 그려지자 부끄럽다며 벽화를 지우고 싶어 했다.

동백나무 머리 벽화가 인기를 끌면서 남편인 할아버지도 자기 얼굴을 그려 달라 요청했지만 할머니 파마머리와 비슷한 크기의 애기동백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제주에서 동백을 구해와 부부의 모습으로 완성된 재치 넘치는 벽화는 마을의 명소가 됐다. 벽화 앞에서 사진 한 장 남기려 섬과 섬을 넘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자은도 둔장해변 무한의다리.
자은도 둔장해변 무한의다리.

△아름다운 해변을 품은 자은도

‘자애롭고 은혜로운 섬’ 자은도(慈恩島)는 신안군의 면 단위 섬 중 가장 크다. 주민들이 손으로 둑을 쌓아 바다를 간척해 농토를 일구어 면적이 넓어졌다. 암태도가 육지와 연결되면서 연도교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됐다. 자은도에는 유난히 아름다운 해변이 많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분계해변에는 거꾸로 매달린 여인의 모습 같은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여인송’이라 이름 붙여진 소나무에 슬픈 사연이 있다. 금실 좋은 어부 부부가 말다툼한 후 남편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시간이 흘러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날마다 분계해변 솔숲에 올라가 남편을 기다렸다.
 

자은도 둔장해변 포토존 너머로 보이는 구리도와 할미도.
자은도 둔장해변 포토존 너머로 보이는 구리도와 할미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소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바다를 바라보니 남편이 탄 배가 돌아오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아내는 큰 소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의 배가 돌아오고 있는 환상을 보며 기뻐하다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얼마 후 바다에서 돌아온 남편은 아내를 소나무 아래 묻어주었다. 소나무는 점차 거꾸로 선 여인의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나무가 바로 그리움이 사무친 여인송이다. 여인의 간절함이 차가운 바람으로 불어오는 듯 솔숲은 흔들리고 겨울 바다는 스산하다.

둔장해변에는 자은도의 명물인 인도교가 있다. 섬과 섬이 다리로 연결돼 육지와 끊임없이 이어져 끝없이 발전하기를 희망하는 마음을 담아 무한대(∞)를 뜻하는 ‘무한의다리’로 이름 지었다. 다리 난간의 곡선도 기호 모양처럼 보인다. 1004m 길이의 해상목교는 자은도와 구리도, 고도, 할미도를 잇는다. 물이 찰랑일 때 다리를 건너면 바다 위를 걷는 듯하다. 썰물이 되면 아름다운 갯벌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둔장해변에서 무한한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듯 쭉 뻗어 있는 다리를 건너면 구리도에 닿는다. 구리도는 들어갈 수 없다. 왼쪽으로 연결된 긴 다리를 건너면 할미도로 이어진다. 할미도에는 동양 최대규모의 독살이 있다. 독살은 서해안의 조수간만 차이를 이용하는 원시 고기잡이 방식이다. 해안에 돌을 쌓아놓고 밀물에 고기가 들어왔다가 썰물에 물이 빠지면 돌담에 남아 있는 고기를 잡는다. 섬이 아담해 기암괴석 절벽과 돌탑을 쌓아놓은 해변을 따라 금세 돌아볼 수 있다. 다리를 건너 다시 둔장해변으로 돌아오면 바다 너머에서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들이 석양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섬은 낭만으로 물든다.

안좌도 김환기화백 생가.
안좌도 김환기화백 생가.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의 예술혼이 깃든 안좌도

안좌도에는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세계적인 화가 김환기 화백의 생가가 있다.

수화(樹話) 김환기는 1913년 안좌도 읍동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때 경성으로 유학 갔다가 다시 일본으로 떠나 그림을 공부했다. 그림값이 가장 비싼 한국 화가로 손꼽히는 김환기가 살던 생가는 그의 그림 한 점 없이 고택만 오롯이 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생가 앞에 ‘요코하마 풍경’이라는 복사본 그림만 걸려 있다.

고택은 백두산 소나무로 지어 견고하고 기품 있다. 대문 앞에는 고인돌처럼 생긴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수화는 청년 시절 이 바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스케치했다.

방 한 칸 크기만큼의 뒤주가 있던 지주 집안에서 풍족했던 그는 1942년 넓은 농토를 모두 농사짓던 소작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안좌도를 떠났다. 맞은편 앞집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등 동네 곳곳에서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자은도 분계해변 여인송.
자은도 분계해변 여인송.

안좌도는 보랏빛 섬으로도 유명하다. 안좌도 남쪽에서 형제처럼 마주 보고 있는 바가지를 엎어놓은 모양의 박지도와 어느 쪽으로 봐도 반달 같은 반월도를 통틀어 퍼플섬이라 부른다. 2007년, 배를 타고 드나들던 두 섬에 처음 다리가 놓였다. 평생을 박지도에서 산 김매금 할머니의 ‘걸어서 섬을 건너고 싶다는 소망’이 이루어졌다.

안좌도에서 박지도까지 547m, 박지도에서 반월도까지 915m의 길이인 해상인도교는 두 섬에서 많이 나는 도라지꽃과 콜라비의 보랏빛 색감에서 영감을 얻어 다리를 보라색으로 칠하고 퍼플교라 불렀다.

세 군데의 섬을 넘나들 수 있는 퍼플교는 보랏빛 옷, 신발, 모자, 우산 등을 착용하면 무료로 건널 수 있다. 박지도는 퍼플교로만 오고 갈 수 있지만 반월도는 나룻배가 있어 퇴촌마을과 안좌도 두리마을을 오가기도 한다. 온통 보랏빛 섬에서 바다를 천천히 떠가는 배와 포구의 풍경은 오히려 정겹다.

섬 안의 아름다운 해안길을 산책하며 둘러보면 촘촘히 붙어있는 지붕, 도로, 휴지통, 식당, 그릇 등도 보라색이다.

마을을 닮아 하늘도 청잣빛으로 빛난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면 다리에 보라색 조명이 불을 밝힌다. 검은 바다도 보랏빛으로 물드는 섬은 신비롭다.

/신안=글·사진 이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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