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본지에 연재된 소설가 김강의 경장편 ‘Grasp reflex’가 최근 막을 내렸다. 수정과 보완 작업을 마친 이 작품은 향후 책으로 만들어져 독자들과 다시 만나게 될 예정이다. /삽화 이건욱

신문 연재소설이 전작소설의 창작보다 어려운 건 ‘독자와의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닐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스타일과 집필 패턴을 조절하며 쓰는 게 가능한 전작소설(여러 회로 나누지 않고 한꺼번에 발표하는 작품)과 달리 연재소설은 ‘매일, 혹은 매주 같은 시간에 신문 구독자들이 작품을 읽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마지막까지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창작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이전 신문 연재소설은 많은 에피소드를 낳았다. 1974년 시작돼 10년을 ‘한국일보’에 게재된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 연재 ‘장길산’.

지금처럼 이메일이나 SNS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황석영은 원고지에 급하게 쓴 1주일, 혹은 2주일 분량의 작품을 자신이 기거하던 도시의 버스터미널에서 서울로 가는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맡기며 “이걸 늦지 않게 한국일보 편집국에 전달해주시오”라고 부탁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할 정도다.

소설가 김강(50)은 2년 전 인터뷰를 진행하며 만났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그에게서 본 것은 문학을 향한 진정성과 성실함이었다.

향후 김 작가의 문장이 동시대 평론가와 독자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는 지금으로선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누구보다 바쁘게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작품을 써내는 문학을 향한 그의 열정은 작품 마감 일자, 그러니까 자신의 소설을 읽는 사람들과의 약속 지키기로 이어질 게 분명한 듯했다.

대부분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기에 자신을 중심축에 놓고 사는 소설가와 시인들. 김강의 성실성은 보편 예술가들 사이에선 쉽게 발견하기 힘든 미덕으로 다가왔다.

그것이었다. “소설을 연재하고 싶다”는 김 작가의 제의를 본지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연재 펑크’가 없을 것이라 믿었던 것.

예측은 엇나가지 않았다. 김 작가는 연재가 계속된 11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원고 마감 시간’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다.

올 1월 첫 주 시작된 연재소설 ‘Grasp reflex’는 11월까지 지속됐고, 적지 않은 독자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이는 김강의 동시대적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공유한 이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텍스트는 텍스트로서 받아들이면 된다”는 게 현대 소설을 이해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다.

그러니, “나는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이 소설을 썼다”라는 작가의 부연이나 “이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잣대는 어떤 문학이론에서 발견할 수 있고, 소설가가 이걸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이러저러한 것이다”라는 구구절절한 비평도 여기서는 그닥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긴 기간 연재된 김강의 소설 ‘Grasp reflex’를 따라 읽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다종다양한 지향을 가지고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버릴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명명백백한 욕망을 서술·묘사하고 있다.

돈과 권력을 독점한 이들의 ‘불사(不死) 욕망’, 거기에 얹혀 자신의 삶을 우화등선(羽化登仙)시키고 싶은 이들의 ‘신분상승 욕망’, 그것이 자신의 이익과 연관된다면 혈친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의 ‘돈에 대한 욕망’….

21세기 현대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와 그 속을 유령처럼 헤매 다니는 등장인물들이 가득한 김강의 소설 ‘Grasp reflex’는 어둡고 음습하게 읽힐 수도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연재소설이 마냥 절망적인 디스토피아(Dystopia)의 문학적 재현에 그치지 않고, 어둠 속에서도 존재해온 희미한 빛으로 은유되는 ‘희망’의 한 조각을 보여줄 수 있는 건 김 작가의 태생적 ‘낙관성’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동서와 고금을 통틀어 낙관(樂觀)이란 미래에 관한 긍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그걸 가진 이들만이 낙관을 이룰 수 없게 만드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적 조건과 싸울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소설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은 ‘모두가 낙관 속에서 사는 웃음 가득한 세상’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좋을 터.

어쨌건 이로써 본지에서의 연재는 끝났다. 머지않아 김강의 첫 경장편 ‘Grasp reflex’는 책으로 모습을 바꿔 또 다른 독자들과 만날 것이다.

작품의 제목이 어떻게 바뀌건 2022년 경북매일에 연재된 소설 ‘Grasp reflex’와 소설가 김강의 문학적 미래를 축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끝>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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