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기자, 포항을 산책하다
죽도시장서 포항운하관 왕복 3㎞

포항운하 산책길의 출발점인 죽도시장.  /경북매일 DB
포항운하 산책길의 출발점인 죽도시장. /경북매일 DB

TV와 라디오에 출연한 의사와 자칭 ‘건강 전도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걷기만큼 좋은 운동은 없다.” 이는 재론의 여지없이 검증된 사실이다. 특별한 준비물이나 비용 없이도 가능한 ‘걷기’는 건강을 염려하는 이들이 반가운 선물처럼 선택할 수 있는 고효율의 운동이 분명하다. 아무런 노력이 없어도 기본적인 체력과 신체 건강이 유지되는 20~30대를 지나 중년에 이른 남녀들은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에 이른바 ‘건강 염려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이때 필요한 게 걷기, 그중에서도 산책이 아닐까?산책(散策)이란 ‘휴식을 취하며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을 지칭한다. 물질적 풍요 이상으로 육체의 건강을 중시하는 21세기. 한국의 지자체들은 이를 감안해 경쟁적으로 ‘OO길’을 만들고 있다. 포항을 포함한 경북 지역 곳곳에서도 적지 않은 OO길, 즉 산책로를 만날 수 있다. 이는 마음만 다잡는다면 얼마든지 ‘건강을 위한 걷기운동’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다. 시간과 돈을 들여 헬스클럽에서 개인 코치를 받는 것도 건강을 위해 나쁠 것 없다. 하지만, 그런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산책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해보는 게 어떨까?소슬한 바람이 불어 덥지도 춥지도 않고, 푸른 하늘과 더 짙푸른 바다, 여기에 물결 일렁이는 강과 운하가 있는 포항의 가을. 휴일이면 종일 가벼운 읽을거리와 텔레비전을 끼고 살며 외출을 잘 하지 않는 게으른 기자가 동년배 중년들을 위해 큰 힘 들이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는 포항의 산책길 몇 곳을 소개하려 한다.

 

포항수협 죽도어판장 지척 송도교부터

노년층까지 부담없이 즐기는 완보 코스

스틸아트 페스티벌 제작 작품 감상하고

카약·페달보트 이용 ‘이색 데이트’ 즐겨

셋째주 목요일 저녁 ‘달빛걷기’ 행사도

시원스레 펼쳐진 포항운하.  /경북매일 DB
시원스레 펼쳐진 포항운하. /경북매일 DB

▲죽도시장에서 출발해 포항운하관으로…

사람살이의 웃음과 눈물이 넘쳐나는 공간 죽도시장. 아귀와 고등어, 오징어와 청어 등 싱싱한 생선이 대량으로 거래되는 포항수협 죽도어판장 지척엔 송도교가 있다. 그 아래로 내려서면 포항운하를 따라 근사한 산책길이 펼쳐진다.

평일 낮에 걸어본 그 길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았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속도로 걸어가며 주변을 살피는 그들의 모습이 평화로웠다. 몇몇은 자전거를 타고 같은 길을 지났다.

얼마나 걸었던 것일까? 해도1동 어린이공원 벤치에서 쉬고 있던 60대 어르신 한 분은 “말없이 혼자 걷다보면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젊은 시절을 추억하는 그의 눈망울이 청년의 그것처럼 빛났다.

일본의 의사 구리타 마사히로(栗田昌裕)는 지난 2005년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펴냈다. ‘산책의 즐거움’이다.

 

운하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 /경북매일 DB
운하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 /경북매일 DB

“15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꽤 많다. 카트라이더, 커피 한 잔, 잠깐 동안의 수면 내지는 수다. 저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효과가 있지만 체력과 지적 능력을 동시에 향상 시킬 수 있는 15분 산책은 어떨까?”라고 권한 구리타는 ‘걷는다’는 행위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한 사람인 듯하다.

책이 출간된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유롭게 걷는 ‘산책의 즐거움’은 변하지 않았을 터. 그래서다. 구리타의 이런 문장을 눈여겨 읽게 된다.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자세히 보면서 걸어 보라. 걷기는 운동의 기본으로 일정 시간 꾸준하게 걸으면 건강에 좋다. 이는 최근 들어 의학적으로 속속 증명되고 있는 사실이다.…(중략) 몸과 마음의 병이나 지적 능력의 부족함 혹은, 정신적 불행을 호소하는 것은 기본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해서다. 산책은 이런 활동의 기본을 배우는 실천의 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후략)’

포항운하길을 걷는 이들 모두가 구리타의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독서 없이도 지속적이고 꾸준한 산책 이후의 몸 상태가 달라졌음을 알게 될 것이니까.

70대 중반인 기자의 모친 역시 ‘산책 중독자’다. 또래 친구들 두어 명과 매일 1시간에서 2시간가량 집 주변 공원이나 야트막한 산을 찾는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보내니 “찌뿌둥했던 몸이 가벼워지고 밥맛도 좋아졌다”는 것이 걷기운동 신봉자인 모친의 자평.

고요하고 가볍게 출렁이는 운하의 물결을 보며 죽도시장에서 포항운하관까지 가는 1.5km 거리. 중년은 물론 노년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산책 코스다.거기선 흥미로운 조형물도 여럿 만나게 된다. 포항 스틸아트 페스티벌을 통해 제작된 작품들을 상설 전시하고 있는 것. 포항운하길을 ‘아트 웨이(Art Way)’라고도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20~30대 젊은이들이라고 산책의 즐거움을 모를까? 밤이 내린 포항운하길을 찾은 그들은 카약(Kayak)에 몸을 싣고 이색적인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해양스포츠 탐험’으로 명명된 이 프로그램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된다. 카약과 페달보트를 대여하는 비용은 성인이 2만 원, 청소년은 1만 원이다.

 

시원스레 펼쳐진 포항운하. /경북매일 DB
시원스레 펼쳐진 포항운하. /경북매일 DB

▲돌아올 땐 반대편 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20~30분이면 송도교에서 운하를 오가는 크루즈 운행의 출발점 포항운하관까지 갈 수 있다. 짤막한 산책도 나쁠 것 없지만 30분은 걷기운동의 효과를 보기엔 다소 짧은 시간.

포항운하길 주변엔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3개 있다. 이름이 재밌다. 탈랑교(橋), 말랑교(橋), 우짤랑교(橋)란다.

영남 사람이 아니면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라며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다. 다리 이름의 뜻을 궁금해 할 사람들을 위해 “(운하를 오가는 저 배를)탈래요? 말래요? 어떡할래요?”라는 해석을 덧붙인다.

위트 가득한 명칭이 재밌는 이 다리를 통해 포항운하를 건너 출발할 때의 반대편 길로 산책을 계속했다. 기왕 포항운하길을 걷는 것이니 포항운하에 대해서도 알아보는 게 좋겠다. 아래 관련된 간략한 설명을 인용한다.

“포항운하는 2012년 5월에 착공해 2014년 1월에 준공됐다. 포항운하 건설사업 지역은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포항시 송도동과 죽도1동 사이로 동빈대교에서 형산강을 남북 방향으로 잇는 지역에 해당한다. 옛 포항역에서 반경 1km, 포항고속 터미널에서 0.5km내에 인접해 있다.”

운하의 과거와 현재, 구체적 건설 과정이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잠시 산책을 멈추고 포항운하관에 들르면 된다. 무료입장이니 금전적 부담도 없다. 불과 10~20여m 떨어진 길이지만, 걸어온 방향과 반대쪽으로 산책을 이어가니 건너편에선 보이지 않던 새로운 풍경이 눈에 띈다.

매일 같이 봐오던 건물과 분홍빛 꽃들이 새롭게 느껴진다. 이런 작고도 사소한 ‘생활이 발견’이 가을날 길을 걷는 산책자의 소소한 행복이 아닐지.

 

포항운하 산책길을 소개하는 안내도. /경북매일 DB
포항운하 산책길을 소개하는 안내도. /경북매일 DB

▲햇살 속이 아닌 달빛 아래 산책은 어떤 매력이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저녁 7시엔 ‘해도동 건강마을 달빛걷기’란 행사가 열린다. 산책의 매력과 즐거움은 낮이 아닌 밤에도 빛나는 것이기에 마련된 건강 프로그램인 듯했다.

환한 햇살 속이 아닌 교교한 달빛 아래서 만나는 포항운하의 매력은 어떠한 것일지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이 아마도 기자를 다음번에 열릴 ‘달빛걷기’에 참여하게 할 것 같다.

“걷기는 누구나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인간이 하는 운동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운동이다. 걷는 것은 몸 전체를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 시키는 것으로 단순해 보이는 동작이지만, 이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관절, 뼈, 근육, 신경 등이 모두 조화롭게 움직여야 한다.…(중략) 걷기는 시간, 장소, 비용문제 모두에 구애 받지 않으면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게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의 설명.

걷기 중 첫 단계가 완보(천천히 걷기)다. 운동 강도가 20~40% 이며, 분속 50~60m의 속도로 시간당 3~3.5km를 이동하는 완보는 분당 2kcal 이내의 에너지가 소요되니 몸이 느끼는 부담이 덜하다.

죽도시장에서 포항운하관까지 오가는 1시간쯤의 산책은 바로 이 ‘완보’에 맞춤한 코스로 보였다.

출발할 때와 비슷한 속도로 걸어 죽도시장이 눈앞에 보이는 우짤랑교에 도착했다. 올려다본 하늘이 사파이어처럼 투명한 푸른빛이다. 늦은 점심으로 시장 수제비골목의 따끈한 칼제비(칼국수와 수제비를 섞은 음식) 한 그릇 먹어야겠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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