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유쾌한 연기를 보여준 류승범.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소슬하게 불어오는 바람, 저 먼 산에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색색깔의 나뭇잎….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집에만 있기에는 뭔가 아쉬운 가을날이 성큼성큼 지나가고 있다. 누구라도 가방을 꾸려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은 계절.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새로운 공간으로 가고 싶어진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로 집을 벗어날 수 없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게 2022년 10월 오늘의 현실. 이 안타까움을 달래줄 적당한 방법이 없을까? 단풍 든 숲이나, 석양 아름다운 바닷가로 갈 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가슴 안으로’ 떠나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하는 ‘여행 같은 영화’ 2편을 추천한다.

중년을 소년 시절로 데려가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과거를 떠올리며 눈물짓는 따위는 분명 젊음의 몫이 아니다. 그러기에 시인 황지우는 이렇게 노래한다. “슬픔처럼 쌍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렇다.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고 과거에 기대 현실을 겨우 견뎌내는 삶은 분명 쌍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잊었던 유년의 기억에서 지금의 자신을 있게 만든 편린을 찾아내고, 그로 인해 젖어오는 가슴으로 훌쩍이는 인간을 단죄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군사독재 따위의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따스함으로 추억되는 1980년대와 정글의 법칙만이 남은 21세기를 오가며 진행되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그려내는 사람들. 현실에서 그들의 삶은 비루하고, 참혹하기 짝이 없다. 반면 그들의 과거는 비참한 지금의 삶과는 대비되는 빛나는 아름다움이다.

오래된 온천 도시 나이트클럽에서 취객들의 흐느적거리는 춤을 위해 기타를 연주하는 성우(이얼 분). 하지만 그에게도 찬란한 시절은 있었다. 바로 보컬그룹을 이끌던 고교 시절.

성우의 첫사랑 인희(오지혜 분)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남편과 사별한 채 야채트럭을 몰며 고무줄바지 차림으로 살고 있지만, 그녀에게도 조안 제트보다 더 멋지게 ‘아이 러브 로큰롤(I Love Rock&Roll)’을 부르던 여고 시절이 있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관객을 소년 시절로 이끈다. /영화 홈페이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관객을 소년 시절로 이끈다. /영화 홈페이지

성우의 고등학교 친구들인 민수와 수철, 인기의 삶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 보컬그룹을 함께 하며 즐거운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이지만, 그들을 묶어주던 음악이라는 연결고리는 끊어진지 오래. 민수는 약삭빠른 처세술을 익힌 속물로 전락했고, 시청 건축과 직원이 된 수철은 환경운동가가 된 인기와 사사건건 대립한다. 그들 사이에 우정 따위의 단어가 틈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빛나던 그들의 과거와 참혹한 현재를 오가는 카메라. 그 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까지 읽어낸 사람이 비단 기자 하나만일까?

건들거리는 폼과 위악으로도 숨길 수 없던 맑은 꿈들. 별을 노래하는 시인이나, 아프리카 오지를 탐험하는 여행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들. 인간은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

그러나 지금은? 저마다 몇 푼 월급에 목을 매고, 꿈과는 동떨어진 일을 죽지 못해 해내며 스트레스로 마신 술에 위장에 탈이 나기 시작하는 중년으로 살고 있는 ‘한때 소년이었던’ 중년들.

이런 생각을 하며 지켜보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화면은 우리를 고문한다. 그러나 고맙게도 임순례 감독은 “인생은 환멸”이라는 결론으로 관객을 이끌지 않는다.

죽음 곁으로 사라진 늙은 음악가를 대신해 나이트클럽 웨이터 기태(류승범 분)는 몰락해가는 성우의 밴드에 합류한다. 이는 ‘음악이 돈과 밥이 되어주지 못해도 그 길을 가려는 사람은 언제고, 어디에서고 있기 마련’이라는 예술에 대한 낙관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멤버들과 싸우고 밴드를 떠나 마을버스 기사로 살아가는 드러머 강수(황정민 분)와 호색한 건반 연주자 정석(박원상 분)이 핸드폰으로 나누는 ‘눈물의 화해’는 감독이 품고 있는 인간에 대한 낙관을 드러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래도 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핵심어를 함축해 보여주는 영화의 라스트 신이 눈에 선하다.

밀려나고 또 밀려나 가 닿은 남도의 끝자락 여수. 성우의 기타 연주에 맞춰 첫사랑 인희가 촌스런 무대의상을 입고 노래를 부른다. 더 이상 예쁘장한 여고생도, 자존심으로 뭉친 콧대 높은 소녀도 아닌 중년여자 인희가 노래를 부른다. 아직도 사랑은 포기 못한 우리의 희망, 그 은유가 아닐까? 비록 비루하고, 참혹할 따름인 세상일이라도 인생이란 진지한 것이며, 언제나 죽음보단 삶이 따뜻했다..

 

‘싱글라이더’는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영화 홈페이지
‘싱글라이더’는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영화 홈페이지

둘이 함께 걷는 길의 따스함 ‘싱글라이더’

정호승의 시(詩)에 가수 이지상이 곡을 붙인 노래가 있다. 사는 것이 덧없고 쓸쓸할 때면 볼륨을 낮추고 조용히 따라 부르고 싶은 노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도입부는 이렇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염세주의 철학자들이 세련되게 해석한 비극적 세계관을 알지 못해도 좋다. ‘존재한다’는 것에 관해 한 번이라도 깊이 생각해본 사람은 안다. 인간의 내부엔 크건 작건 외로움의 사막 또는, 쓸쓸함의 우물이 들어서 있다는 사실을.

여기 예상치 못했던 사건 탓에 잘나가던 증권회사 지점장에서 오갈 데 없는 실직자가 된 한 사내(강재훈·이병헌 분)가 있다. 영어도 배우고 자립 기반도 만들기 위해 멀고 먼 외국에서 2년 가까운 시간을 고생해 2천만 원의 돈을 모은 젊은 여성(유진아·안소희 분)도 있다.

지점장과 성공한 호주 워킹홀리데이 경험자가 되기 위해 둘은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을까. 하지만, 자신의 존재 바깥에 있는 ‘동정 없는 세상’은 두 사람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흘린 눈물과 땀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되물을 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세상에 슬픈 게 너 하나야?”

이주영 감독은 자신이 각본까지 쓴 영화 ‘싱글라이더’를 통해 이 처참한 질문 앞에 선 두 사람의 길고도 짧은 궤적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담담하고 건조한 연출이 관객들을 슬픔으로 이끈다. 먼저 흥분하고, 교사처럼 가르치려는 감독은 분명 아닌 듯해 믿음이 간다.

직장에서 밀려난 한 사내가 아내와 아들이 있는 호주를 찾아간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자신과는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갑자기 낯설어진 아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내.

20대 초반에 낯선 땅에 와서 죽으라고 일만 했다. 겨우겨우 모은 작지 않은 돈. 그걸 좀 더 좋은 조건의 환율로 바꾸고 싶었던 여학생은 불행한 사건에 직면한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친구가 된 두 사람. 둘 앞엔 누구도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데….

강재훈이 처한 벼랑 끝 상황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무엇이 자신감 넘치던 그를 외롭고 난감한 처지로 이끌었을까? 그건 바로 아내를 포함한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소통의 부재가 아니었을지.
 

곤경에 처한 중년을 연기한 ‘싱글라이더’의 이병헌. /
곤경에 처한 중년을 연기한 ‘싱글라이더’의 이병헌. /

눈 밝은 이들은 이주영 감독이 무관심과 소통 부재의 사내 강재훈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 곤경에 처한 소녀 유진아였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차린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어려움에 처한 남을 돕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던 강재훈. 그는 유진아를 통해 자신의 메말랐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싱글라이더’의 마지막 장면은 따스함으로 인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 듯하다. 원시의 파도가 몰려오는 황량한 공간. 그 무인지경의 길을 강재훈과 유진아는 혼자가 아닌 둘이서 걷고 있다.

이지상이 노래한 정호승 시의 한 구절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안다.

하지만, 하나가 아닌 둘, 둘이 아닌 셋이라면 그 ‘견딤’이 조금은 덜 쓸쓸하지 않을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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