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올해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8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다. 애초의 예상과 다르게 우크라이나의 선전이 이어지며, 러시아의 핵 사용에 대한 공포까지 감지되는 상황이다. 한편 지난 8개월 우리는 유례없는 인플레이션을 맞이해야만 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8%를 상회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 연준은 올해 기준금리를 연속해서 3번이나 0.75%를 올렸다. 유럽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에너지 대란의 영향으로 마침내 10%를 넘겼고, 한국의 물가도 30년 만의 최고치를 달성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은행도 전례 없는 금리 인상을 했다. 전 세계가 역사적인 고물가, 고금리 시대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은 경제 위기를 가져온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전 세계가 펼친 ‘코로나19’와의 전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겹치며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가 자국 중심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소련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러시아의 광기는 두말할 나위가 없으며, 미국은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는 과정에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은 자국 기업이 해외에 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제한하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제품을 중국으로 판매하지 못하는 법안을 공표했다.

글로벌 시대에 자국 중심주의가 회귀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의 일상에서 이런 변화는 자산 가격의 급락으로 표현된다. 불과 2년 전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가 살포한 현금으로 우리는 유동성 잔치를 즐겼다. 잔치에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벼락거지’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기도 했다. 이제는 다시 주식에서 예금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 하락 뉴스가 매일 들려오며 개미 투자자들의 미래도 암흑 속에 쌓여있다.

자국 중심주의로의 회귀는 경제 위기를 유동성으로 해소하려는 현대 자본주의의 속성에서 생겨난 것이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과 2017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펼친 미국 중심의 정책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다는 목적을 공유했다. 처음부터 ‘공동의 이익’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코로나 위기를 겪으며 미국이 살포한 달러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발등에 떨어진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위기가 닥치면 막대한 유동성으로 극복하려는 정책이 어떤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막대한 유동성이 곧 현금 살포를 의미하는 상황에서 달러 패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는 곧 다른 국가들의 더 큰 위기를 초래한다. 이런 점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UN이 미국의 금리 인상 자제를 촉구한 것은 상징적이다. 우리는, 그리고 세계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차분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