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심연에 내려가려면,
날개가 있어야 하리
(중략)
심연을 잃고
물 밖에 떨어진 잎사귀
그게 나다.
도망은 끝난 지 오래다
물을 움켜쥘 어떤 발톱도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심연 속에
가득한 날개가
모래와 자갈을 헤치며
물 속을 뒤엎을 때,
흐린 잎맥의 기억으로
폭풍을 예감할 뿐 (부분)
시인은 비록 “심연을 잃”었지만, 심연과의 끈을 “흐린 잎맥의 기억”으로 놓치지 않으면서 심연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심연은 우리의 일상적 시간성의 선을 끊어버리며 저 깊이 검게 자리를 차지한 공간이다(그러나 외연을 짐작할 수 없어 공간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러한 심연에 감히 들어간 ‘날개’가 그 속의 물을 “뒤엎을 때”, 시인은 어떤 폭풍의 시간이 오게 될 것이라고 영매처럼 알려준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