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

아내가 다녀갔다

베란다 빨래줄에 매달려 있는

양말과 철 지난 옷들이 증거다

(중략)

흙갈이를 하지 않아 돌멩이보다 단단하게 굳은

검은 흙덩이가

벌써 여러 해 전에 죽은 고목나무와 함께 말라가고 있다

아내는 눈물이 많은 여자다

말라 가는 빨래의 소매에서

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물방울

빈 항아리의 주둥이를 적시고 있다

세상이 한증막 같다는

죽은 아내의 목소리가

햇볕에 달구어진 붉은 항아리에서

거미와 함께 올라온다

(부분)

시적 화자는 빨래에서 죽은 아내를 생각할 만큼 그리움에 사무쳐 있다. 그는 그리움에 지쳐, 고목나무처럼 이미 죽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물 많은 아내에 대한 기억은 그 말라버린(빈) 항아리의 주둥이를 적셔준다. 하나 아내와의 상상적인 만남이 아내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게 할 터, 더욱 절절한 그리움의 심정에 그를 빠뜨려 그가 홀로 한여름의 뜨거운 적막 속에 던져져 있음을 아프게 깨닫게 만든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