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얼마 전 인터넷에 “임영웅, 주제 파악해줘”라는 글이 올랐다. 임영웅 씨의 안티팬이 악성 댓글을 올렸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임 씨가 1만석 규모인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를 했는데, 입장권 구하느라 전쟁을 치른 팬들이 아우성친 것이다. 이제 무명 가수가 아니라 10만명을 수용하는 올림픽 주 경기장이 어울리는 인기 가수라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임영웅처럼 ‘주제 파악’을 좀 해야 한다. 그는 이제 검사가 아니다. 친구들과 막걸릿집에 잡담하고, 말실수가 소탈해 보이던 시절은 끝났다. 좋은 남편, 인정 많은 친구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다. 어제의 윤석열과 오늘의 윤석열은 달라야 한다.

윤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난 뒤 행사장을 나서면서 뱉은 말로 시끄럽다. MBC가 22일 윤 대통령이 ‘이××’ ‘쪽팔려서’라고 비속어를 쓰는 영상을 공개했다. 같은 영상인데 들은 말은 조금씩 다르다. 1차 보도한 MBC와 민주당은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한국)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믄’(날리면)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날리믄,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서 만났다. 에이즈·결핵·말라리아의 예방과 치료 재원을 조성하는 협력기구다. 미국은 전체 목표액의 3분의 1인 6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고, 한국은 1억 달러를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웃으며 대화한 직후 바이든을 조롱하는 말을 했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더군다나 절대다수 야당이 ‘국회’에서 예산안을 심의 중인 점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이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라는 말은 한 것 같다.

바이든을 겨냥한 말이라면 이런 외교적 결례가 없다. 미국 정부는 한미동맹이 튼튼하다는 말로 비껴갔지만, 욕설을 들은 당사자는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한국 대통령실이 아니라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부득부득 우기며 사서 욕을 먹으려 하지는 않을 거다. 우리도 외교 문제로 번지는 건 막아야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윤 대통령은 언행을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사석이라고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손짓, 눈짓 하나까지 주목받는다. 국민의힘에서 문자 파문이 계속되는 걸 봐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이 자기를 겨냥해 ‘이××, 저××’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그런 표현을 남자답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건 건달문화다. 더군다나 대통령이라는 자리에는 너무 안 어울린다.

윤 대통령은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 ‘변변하지 못한 처지’를 말하는 ‘주제’가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그렇지만 임영웅 씨에게 재미있게 비틀어 쓴 표현대로 자신의 처지에 맞은 언행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국가의 대표로서 그 품격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 말만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다. 대통령에 앉고도 범부 시절 고치 안에 갇혀 있어선 곤란하다. 가정집 실내 공사하던 경험으로 국가사업에 아는 척 끼어들 일이 아니다. 가까운 친구들과 의기투합하던 시절처럼 의리에 기대 인사해서도 안 된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두환 대통령이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에게 맡긴 것”을 이유로 들었다. 자신도 “최고의 전문가들을 뽑아서 적재적소에 두고, 저는 시스템 관리나 하면서 국민과 소통하고 아젠다만 챙기겠다”라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머리는 빌리면 된다”라고 말했다. 바보라서 빌리는 게 아니라 국정은 최고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설픈 지식은 독이 된다.

윤 대통령은 보고받을 때 듣기보다 말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고 한다. 분수에 맞게 눈과 언행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주변 관리와 조직도 습관의 틀을 깨고 다시 볼 때가 됐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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