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미술관 ‘빛의 중정’.

여름 볕에 지친 제주의 초록 숲이 서늘한 바람에 흔들려 가을빛으로 물들어간다. 계절은 또 오고, 햇살은 깊어진다. 차분해진 제주의 풍경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미술관에서는 예술의 향기가 흘러나온다. 가을의 초입, 예술을 감상하며 사색하기 좋은 미술관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김창열·이중섭·김영갑갤러리두모악미술관 등
제주도 곳곳서 예술의 향기 풍기며 관람객 유혹
화백의 다양한 작품 감상으로 예술가의 삶 엿봐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제주시 한림읍에 있는 김창열미술관은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김창열 화백의 대표작품 220점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추어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히는 김창열은 활동 초기에 6·25전쟁의 아픔을 형상화한 추상 작품을 그렸다. 1973년 파리에서 물방울작품을 처음 선보인 후, 캔버스, 신문지, 나무, 흑연, 모래 등에 오랜 세월 물방울만 그렸다.

물방울은 캔버스 위에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기도 하고, 흩뿌려진 빗방울처럼 맺혀 있기도 하다.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또르르 흘러내릴 듯한 물방울은 작품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색채로 빛나기도 한다. 미술관 곳곳에서 구르는 물방울을 감상하다 보면 마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

미술관 건물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한자 ‘돌아올 회(回)’처럼 보인다. 물방울을 통해 무(無)로 회귀하고자 했던 작가의 철학이 공간에 투영되었다. 건축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빛의 중정’은 글자의 모양처럼 건물 한가운데 자리한다. 하늘이 뻥 뚫린 정원 분수 한가운데 놓인 물방울 조형물은 쏟아지는 빛을 머금어 반짝인다. 비가 그친 뒤 무지개가 떠오르듯 분수의 물줄기가 꺼지면 오색찬란한 빛이 물방울에 맺힌다. 검은 송판 무늬의 콘크리트 건물은 화산섬에 깔린 현무암처럼 제주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중섭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이중섭 미술관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황소’의 화가 이중섭의 예술혼이 담긴 이중섭 미술관은 그가 머물던 서귀포에 있다.

이중섭은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두 아들까지 얻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제주도까지 내려오게 된다. 1951년 1월부터 1년간 지낸 서귀포에서의 생활은 궁핍했다. 그림 그릴 재료와 도구가 없어 나무판자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가난 속에서도 아이들과 바닷가에 나가 게를 잡거나 농장에서 감귤을 따며 소박한 행복을 누렸다. 그래서일까. 당시에 그린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바닷가의 아이들’ 등에는 따뜻함이 묻어있다.

이중섭 미술관이라지만 소장한 작품의 거의 없어 한산했던 미술관은 최근 이건희 컬렉션의 12개 작품이 더해져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70여 년 만에 서귀포 품으로 돌아온 대표작품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이중섭 미술관 근처에서 그린 것으로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미술관 옥상에 올라가 내다보면 이중섭이 바라봤을 서귀포 앞바다의 섶섬이 여전히 푸른 바다 위에 그대로 떠 있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 정원.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 정원.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

서귀포 동쪽 성산읍에 있는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은 폐교였던 삼달분교를 개조해 2002년 문을 열었다. 한라산의 옛 이름이기도 한 ‘두모악’에는 20여 년 동안 제주의 풍경과 도민을 필름에 담아온 사진작가 김영갑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김영갑은 서울에서 제주를 오가며 사진을 찍다가 제주의 풍경에 매혹돼 1985년 정착했다. 섬, 바다, 오름, 나무, 이름 없는 풀꽃들이 하나하나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의 필름에서 작품이 되었다. 그는 구좌읍 종달리의 풀밭 오름인 용눈이오름을 가장 사랑했다. 사계절, 이른 새벽부터 달 밝은 밤까지 열정을 바쳐 평화롭고도 쓸쓸한 오름의 초원을 사진에 담았다.

당근이나 고구마로 배고픔을 달래고 돈을 아껴 필름을 샀다. 창고에 차곡차곡 쌓인 사진을 전시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버려진 초등학교를 구했다. 공간을 다져갈 무렵,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이 떨리고 허리에 통증이 왔다.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카메라를 들지도, 걷지도,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됐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간신히 움직여 사진 전시관 만들기에 열중했지만, 투병 6년 만에 그는 사랑했던 섬 제주, 두모악에 잠들었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의 ‘두모악관’, ‘하날오름관’에서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제주의 모습과 속살을 감상할 수 있다. 병과 힘겹게 싸우면서도 제주의 돌과 바람, 사람을 모티브로 손수 일군 정원에는 작은 뷰파인더로 세상을 바라보며 치열하게 살다 간 예술가의 설렘과 고통이 곳곳에 배어 있다.
 

훈데르트바서 파크.
훈데르트바서 파크.

△우도 훈데르트바서 파크

소를 닮은 섬, 우도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와 함께 오스트리아 대표 예술가로 꼽히는 화가이자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숙박 시설, 카페, 갤러리, 뮤지엄이 한데 모여 있는 ‘훈데르트바서 파크’의 알록달록한 색채는 신비로운 섬에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진다. 자연을 테마로 작품을 구상하는 훈데르트바서의 철학 때문일 것이다.

뮤지엄 건물은 독일에서 제작해 공수해 온 78개의 세라믹 기둥, 궁전 같은 양파 모양의 돔, 131개의 크고 작은 창문들로 만들어져 자체가 예술품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훈데르트바서하우스’의 화려한 색감과 곡선미 넘치는 건축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훈데르트바서는 ‘직선은 부도덕하며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며 그림과 건축물에 물이 흐르는 듯한 곡선만 표현했다.

뮤지엄 회화관에서는 빛나는 원색을 좋아한 훈데르트바서의 회화가 진품만큼 강렬한 색채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판화관에는 훈데르트바서가 직접 그린 판화 22점도 소장·전시하고 있다. 환경 건축관에는 독일 다름슈타트(Darmstadt)의 ‘나선의 숲’ 건축물 모형이 전시돼 있다. ‘나선의 숲’은 독일 다름슈타트에 설계된 서민 아파트로,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던 훈데르트바서가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지은 나선형 모양의 건물을 지붕까지 산책하듯 오를 수 있게 만들었다.

우도의 테마파크도 그의 정신을 불어넣어 건설했다. 부지에 자생하던 1600여 그루의 나무들을 건축물에 그대로 옮겨 심었다. 메마른 건축물에서 생명이 숨을 쉰다. 자연을 품은 화려한 색채의 건물은 우도의 아름다운 풍경에 그림처럼 스며든다.

 

북촌리브.
북촌리브.

한적한 제주 독채형 숙소로 GO~

여행을 일상처럼 즐기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제주의 자연을 집 안에서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독채형 숙소가 사랑받고 있다. 취사 가능한 주방까지 갖춘 매력적인 숙소에서 가족과 편안하게 쉬고 싶다면 제주 속 보석 같은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아보자.

▷탁 트인 창과 툇마루에서 만나는 제주의 자연, ‘송당미학’

‘오름의 정원’이라 불리는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송당미학’은 거실의 커다란 통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삼각 지붕의 높은 천장으로 쾌적하고 시원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통창을 열고 나가면 툇마루에서 오름의 능선과 먼바다가 내다보인다. 흔들의자에 앉아 새소리를 듣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다.

▷제주 바다와 가까운 소박한 돌담집, ‘이플’

제주 동쪽 구좌읍 한동리 작은 바다마을에 있는 ‘이플’은 소박하고 아담한 독채 숙소다.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낡은 돌집과 마당을 정성 들여 가꾼 숙소 침실 창으로 아침볕이 가득 들어온다. 초록 잔디 마당을 두른 돌담 너머로 보이는 바다에서 아침에는 눈부신 일출을, 저녁에는 고즈넉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하늘 보이는 자쿠지에서 누리는 제주의 운치, ‘북촌리브’

제주시 조천읍의 ‘북촌리브’는 욕실 천장 창에서 하늘이 보이는 자쿠지가 있다. 안거리와 밖거리에 각각 잔디마당이 있다. 정겨운 돌담집 내부는 서까래 기둥을 살려 전통적이면서도 모던하고 깔끔하다. 마당에서 바비큐를 즐길 수도 있고, 바닷가 어촌마을에 있어 집 밖을 산책하며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제주=글·사진 이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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