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법원에서 기각될 것이라고 자신했던 비대위원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서 국민의힘이 혼돈에 빠졌다.

새 비대위 구성에 나섰지만 어떤 돌발변수가 작동할지 알 수 없다. 정당의 정치적 행위를 사법부의 판단에 맡겼으니 정치권의 예단도 의미가 없어졌다.

이 대목에서 무위자연의 도를 주창한 ‘노자의 법’을 떠올리게 된다. 노자는 “가장 선한 사람은 마치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할 뿐 공을 다투지 않고 머무나니, 물은 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물은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그것을 내세우거나 뽐내지 않으며, 낮은 곳을 향해 흘러 남들이 기피하고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을 찾아든다.

노자는 이를 두고 “공을 다투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또, 물은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글게 된다. 즉, 물은 결코 ‘나를 주장하지 않는다’. 물의 이런 모습에서 노자는 “물은 도에 가깝다”고 했다. 여기서 물 수(水)에 갈 거(去)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법(法)은 말 그대로 ‘물이 흐르듯 순리대로 풀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바로 ‘노자의 법’이다.

하지만 요즘 ‘법대로’란 말은 순리대로 풀어나가려고 했던 일이 더 이상 해결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온다. 그렇다 하더라도 법을 만드는 입법부 영역에서 활동하는 정당의 정치적 행위를 사법부의 판결대에 올린 것은 무모했다.

그래서일까. 국민의힘이나 이준석 전 대표 모두 순리를 거스른 대가를 치르게 됐다. 국민의힘은 추석 전인 8일까지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띄우기로 했다. 2일과 5일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할 경우 ‘비상상황’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당헌 개정안을 의결하고, 8일 신임 비대위원장 임명안을 전국위에서 의결하겠다는 구상이다. 비대위 전환 요건인 ‘비상상황’을 명시적으로 규정해 새 비대위의 사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사태로 윤핵관들도 된서리를 맞게됐다. ‘원조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백의종군(白衣從軍)을 선언하고 2선으로 후퇴했고,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비대위 출범 이후 자신사퇴의 뜻을 내비쳤다. 대통령실 윤핵관 라인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솎아내는 인적쇄신도 한창이다.

집권 1년차 민심을 가를 추석명절 밥상에 정부·여당이 ‘내홍 수습’과 ‘인적 쇄신’을 올리려 안간힘을 쏟는 모양새다. 문제는 ‘돌발변수’다. 비대위가 추석 전에 닻을 올리려면 일주일 내에 상임전국위와 전국위를 각각 두 차례씩 치러야 하는데, 당내 반발 등 돌발 상황이 우려된다.

새 비대위가 꾸려져도 걱정이다. 당권주자인 안철수 의원이 ‘비대위 반대파’로 돌아섰고, 이준석 전 당대표도 ‘새 비대위 출범’을‘위장 거세쇼’라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와 윤핵관들을 직설적으로 공격하면서 적지않은 반발을 샀던 이 전 대표다. 그는 과연 국민의힘을 어디로 몰고 가고 싶은 것일까. 그에게 공을 다투지않는 ‘노자의 법’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