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먹지에 스며든 통증

하늘빛이 자궁으로 들어가고

장승의 광대뼈도 검게 물들었다

느티나무를 뚫은 바람은
밤의 몸을 가르고
억새가 잠든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아픈 표정을 가린 
팽나무의 실루엣이 더 검게 보였다

하늘에서 잿가루가 떨어져
밤길을 걷는 발자국이 지워지는 그믐

모든 하늘빛이 자궁으로 되돌아갔다.
(부분)

“자궁으로 들어”간 ‘하늘빛’이 잿가루가 되어 그 자궁에서 다시 나오고 있다. 하여 그믐달이 뜬 밤에는 삶(자궁)과 죽음(잿가루)이 뒤바뀌고 혼재된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세계는 “아픈 표정”을 짓는다. “밤의 몸을 가르”면서 세계의 뭇 존재자들을 꿰뚫고 지나가고 있는 바람 때문이다. 바람은 죽음의 흔적-잿가루-을 여기저기 뿌리고, 그믐의 세계에는 이렇게 죽은 자의 흔적들이 ‘먹지’처럼 검게 스며든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