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영현

당신의 속눈썹에 앉은 하얀 입자,

세상의 경계를 지우려던 모든 파동이

나풀거린다

오직 발자국만으로 두 개의 행성 사이,

그 가깝고도 따스한 거리를 재던

자오선의 길이

태양이 그림자를 가장 줄일 때

첫눈이 오면 만나자던 약속은

정거장의 늙은 시계탑을 생각하게 한다

창을 열지 않아도 길은 은박지처럼 눈을 찌르고

사랑이라는 말은 말풍선이 되어

입김 같은 너를 떠오르게 했다 (부분)

“당신의 속눈썹” 위에 내리는 첫눈은 당신과 나를 연결해준다. 세계의 경계를 지우며 “모든 파동이/나풀거”리는 첫눈의 풍경. 당신과 나, 두 “행성 사이”가 “가깝고도 따스한 거리”임을 보여주는 첫눈 내리는 자오선. 하여, 사랑의 존재를 가시화해주는 첫눈. 그러나 지금은 “첫눈이 오면 만나자던 약속은” 다만 “정거장의 늙은 시계탑” 속에 갇힌 시간, 이제 사랑은 만화의 말풍선처럼 “너를 떠오르게” 할 뿐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