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영

신이 거대한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다.

인간은 오리털 파카에 갇힌 무수한 오리털들, 이라고 시인은 쓴다.

이따금 오리털이 삐져나오면 신은 삐져나온 오리털을 무신경하게 뽑아버린다.

사람들은 그것을 죽음이라고 말한다. (중략)

죽음 이후에는 천국도 지옥도 없으며 천사와 악마도 없고

단지 한 가닥의 오리털이 허공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다 바닥에 내려앉는다,

고 시인은 썼다.

이 시에 따르면 인간은 신이 입은 오리털파카 속 오리털들이며, 인간의 죽음은 삐져나온 오리털을 신이 “무신경하게 뽑아버”리는 일일 뿐이다. 이 엉뚱한 이야기에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어떤 가차 없는 진실이 담겨 있다. 시인은 사후 세계에 대해서도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환상을 갖지 말라고 한다. ‘단지’ 어떤 움직임은 있다. “허공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다” 떨어지는 ‘오리털-인간’의. 삶의 비정하나 슬픈 운명.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