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호수

얼굴은 슬픔의 태막

슬픔이 태어날 때마다

얼굴이 찢어져서

뒤집어 쓸 얼굴이

필요해 더 많이

밤하늘의 검은 동공은

겹겹이 쌓인 시간의 그림자

그림자는 다시

밤의 얇은 살갗

녹아내리는 손으로

빈칸이 된 얼굴을 휘젓다 깨어나

벼르고 벼르던

낡은 수건 한 장을 버렸다(부분)

밤하늘의 동공을 바라보는 얼굴과 그 동공으로 시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밤의 그림자가 대면한다. 그러자 손은 녹아내리고, 슬픔이 스며들며 찢어지는 얼굴은 빈칸이 된다. ‘얼굴-주체성’은 저 밤의 그림자와 뒤섞여 그림자의 시간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낡은 수건 한 장을” 버린다. 이제 그는 밤과 뒤섞인 존재가 되었으므로, 그의 몸에 묻은 밤을 닦아낼 수건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리라.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