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용

꼬박 하루를 지나야 빵이 익는다고

느리게 흘러가는 이곳의 시간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나도 느릿느릿

내일까지 모레까지 그리고 아득한 훗날까지

당신이 익기를 기다려야 하겠다고,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우리 잠시 서로를 놓아준 틈에 잘 익어가기를,

그러다 세상 반대편에서 빵을 캐 먹듯

서로 뜯어먹을 수 있기를(부분)

“시간을 닮아” “느리게 흘러”가며 천천히 익어가는 삶, 그리하여 빵처럼 “세상 반대편”에 있는 타인이 뜯어 먹을 수 있게 되는 삶. 그것은 사랑의 삶이겠다. 그 삶을 굽는 화로는 기억이며, 기억을 통해 익어가는 것은 기억 속의 ‘당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인으로서의 삶이기도 하겠다. 기억의 불로 사랑하는 당신을 굽는 행위는 시 쓰기를 가리키기도 하기에. 자신의 기억으로 타인이 먹기 좋은 빵을 구워내는 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