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그대들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뒷장에 /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못할 감격에 떨린다! / 이역의 하늘아래서, 그대들의 심장속에 용소슴 치던 피가 / 이천삼백만의 한사람인 내혈관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듯 찢어질듯. / 침울한 어둠속에 짓눌렸던 고토의 하늘도 / 올림픽의 거화를 켜든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한자만 한글로 바꾸고 원문 그대로 옮김)

1936년 8월 11일자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심훈의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마라톤에 우승한 손, 남 양군에게-’ 1연과 2연이다. 시가 실리기 이틀 전인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남승룡 선수가 동메달을 땄다. 이 소식은 신문 호외로 식민지 조선 전역에 바로 퍼져나갔다. 내선일체를 내세운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절망으로 내리닫던 조선 백성들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기쁜 소식이었을 터. 소설 ‘상록수’와 시 ‘그날이 오면’을 쓴 심훈 역시 이날의 감격을 호외종이 뒷면에 시로 쏟아냈다.

그러나 기쁨을 만끽해야 할 우승자 손기정은 정작 그러지 못했다.

“나는 이기었습니다, 2시간 29분 19초 2의 올림픽 신기록이었습니다.…. 언덕에 다다르니 우리나라 일장기가 나를 응원하여 주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 승리는 결코 내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전 우리 일본 국민의 승리라고 할 것이외다.” 우승 당시 그의 인터뷰 내용이다. ‘일장기의 응원, 일본 국민의 승리’를 말하는 목소리에서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듯한 슬픔이 역력히 느껴진다. 실제로 인터뷰 중간에 “크게 읽어.”라고 강요하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있다.

우승 직후 손기정은 친구에게 엽서 한 장을 보낸다. 올림픽 마크가 그려진 엽서에는 “슬푸다!!?”라는 단 한마디 말이 느낌표 두 개, 물음표 하나와 함께 적혀 있을 뿐이다. 올림픽에서 우승했지만 한국(대한제국)인이 아닌 일본인 ‘기테이 손’으로, 가슴에는 일장기를 달고 시상대 위에 서야 했던 심경이 이 엽서에 처연히 담겨 있다. “내 소원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손기정으로 기억되는 것이다.”라고 한 손기정은 해방 후 올림픽 공식 기록의 국적과 이름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손기정의 ‘슬푼 우승’ 9년이 흐른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팻맨(Fat Man)’이라는 이름의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히로시마에 첫 번째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투하된 지 사흘 뒤의 일이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다음 날인 8월 10일 일왕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 의사를 표했다. 그리고 8월 15일. 우리는 광복을 맞았다.

며칠 전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그의 방한에 따른 대통령과 국회의 의전에 대해 말들이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놓인 우리의 미묘한 처지가 노정된다. 이제 일장기를 달 일은 없다. 태극기 아닌 그 어떤 것도 우리 가슴에 달려서는 안 된다.

오늘 다시 진정한 광복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