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

무너진 둑을 수리하느라, 물을 빼버려

뻘을 드러낸 천흥저수지에도

밑바닥 가득히 눈이 쌓였다

겨울 내내 저수지를 지날 때마다

내 밑바닥 또한 모든 것이 비워지면

저렇듯 흉물스러울 것이라고만 여겼거니.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삶의 몇 조각 남루만이

뻘에 처박힌 쓰레기들처럼

아프게 눈을 찌르리라 여겼거니.

퍼붓는 눈 속에 스스로마저 지워져버린

오늘, 천흥저수지와 더불어 밑바닥에 쌓이는

비워짐의 무게, 그 눈부심!

‘무너진 둑’은 무너진 삶을 의미할 터, 무너진 삶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삶에 남아 있는 것들을 인위적으로 지워버려야 한다. 하지만 “삶의 몇 조각 남루”인 기억들은 “쓰레기들처럼/아프게 눈을 찌르”며 지워지지 않는다. 반면 눈이 쌓이고 있는 물 빠진 저수지는 “스스로마저 지워져버린”다. 눈은 눈‘꽃’이기 때문, 그 꽃의 눈부신 순결함이 ‘나’라는 저수지를 “스스로마저”, 즉 자아마저 지우게 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