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오래전 그녀와 통했던 비인 앞바다에 갔다가

물결이 채색한 무지개빛 조개껍데기를 주워 와

흰 접시 맑은 물에 넣어서 서탁에 얹어두고

오래오래 들여다보았더니

스무 살 봄풀 같은 아내를 다시 만났네

물속에 어떤 사물을 넣었을 때, 그 사물은 어느덧 아름다웠던 시절을 현실화한다. 오래전 아내와 사랑을 나누었던 장소에서 가져온 조개껍데기를 접시 위 맑은 물에 넣고 들여다보니 스무 살 시절 아내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 물은 오래전에 펼쳐졌던 사랑을 다시 복원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물위에 쓰는 글 역시 그러하지 않겠는가. 물속에 용해된 글도 마법처럼 현실화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시인은 물 위에 글을 쓰는 고독을 살고 있는 것일 테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