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권력의 비대화는 부패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공권력의 두 축인 검찰과 경찰도 마찬가지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수사 주체가 바뀌어도 민주적 통제는 여전히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역설했고, 윤석열 정부는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주장한다. 하지만 두 정부는 모두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할 사정기관의 정치적 중립에는 관심이 없다.

정권교체로 여야의 공수(攻守)가 바뀌었다. 정부여당은 민주적 통제를 명분으로 경찰을 장악하려는 반면, 야당은 수사기관의 중립성을 보장함으로써 정부여당의 영향력을 배제하려 한다. 집행 권력을 가진 정부여당은 입법이 필요 없는 시행령으로 경찰을 통제하려고 하는 반면, 입법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야당은 법적 제도화를 통해서라도 경찰의 중립성을 제고시키려 한다.

‘민주적 통제’와 ‘중립성 훼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권력기관은 통제받지 않으면 부패되지만, 정치권력에 의한 통제가 강화될수록 중립성은 더욱 훼손된다. 권력의 속성상 모든 권력은 통제받아야 한다는 ‘당위론’과 권력에 의한 통제는 사정기관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킬 뿐이라는 ‘경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권력정치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엄존하는 딜레마이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권력이 비대해진 경찰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문제는 통제의 구체적 방법론이다. 현재 추진 중에 있는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은 경찰의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조직법과도 충돌한다는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행안부장관이 인사와 감찰을 무기로 통제할 경우 경찰은 무력화(無力化) 될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의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민주적 통제는 권력의 예속화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 “검찰의 중립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를 공약했다. 하지만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이 없는 상태에서 ‘윤석열 라인’을 중용하여 대통령-장관-검찰청으로 이어지는 직할체제를 구축했다. 이러한 코드인사가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한다는 말인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수사기관의 생명은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이다. 권력의 시녀가 된 검찰에게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민주적 통제의 이름으로 공권력을 예속화하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정치는 ‘민주를 빙자한 독재’이며 ‘권력을 위임한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모든 권력기관은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지만, 공정성이 생명인 사정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정권이 검찰과 경찰을 허수아비로 만들면 당장은 통치하기 쉬울지는 몰라도 결국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온다.

민주적 통제와 정치적 중립이 충돌할 때는 시비를 가려줄 심판관이 필요하며, 그 심판은 바로 대통령과 국회에 권력을 위임한 국민이다. 심판은 공정해야하기 때문에 이념과 진영에 갇혀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의 권모술수와 감언이설에 현혹되지 않는 국민의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