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엽

이곳 바닷가 기슭에서

머리칼의 기억을 풀어헤치며

늙지도 않는 당신의 서문(序文)을 꺼내 읽는다

밀려왔다 쓸려가며

넘나들었던 숱한 피멍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저 격정의 세계에

발가벗고 뛰어드는 아이들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

늘 푸름이 바탕이라서 늙을 것 같지가 않다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던 날,

말없이 등을 다독이며 돌아섰던 난바다

영영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며

억겁의 창문을 열고 뜨겁게 밀려들고 있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을 태세다.

당신이 눈앞의 저 바다와 겹쳐진다. 당신에 대한 기억은 저 ‘난바다’가 “말없이 등을 다독이며 돌아섰던”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늙지도 않은 저 바다는 “영영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며” 시인 앞으로 ‘뜨겁게’ 밀려들고 있다. 바다는 “숱한 피멍의 숨소리”를 통해 자신의 ‘격정’적인 영혼을 드러내고, 이 바다를 마주한 시인 역시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어 저 ‘파랑’의 세계처럼 새파란 존재로 변화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