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정권교체기에는 전 정권의 국정철학에 적극 동조하며 협력했던 정무직 공무원들의 거취가 항상 문제가 된다.

당사자들은 조금이라도 자리를 더 지키고 싶어하는 반면 새 정부에서는 자신들의 사람으로 채우고 싶어한다. 그러다보니 반강제적이거나 우회적인 압박을 통해 사퇴를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불거지는 것이 바로 블랙리스트 논란이다. 최근에 기소된 백운규 전 장관의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도 마찬가지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산업통상자원부 박 모 국장이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8개 공공기관장들에 대해 임기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진 사퇴를 종용힌 사건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다가 3년만인 올해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다시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 정치권에서 블랙리스트가 처음 거론된 것은 1980년대다. 1984년 ‘민주노동자 블랙리스트 철폐 대책위원회’구성 후 1970~80년대 노동탄압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때는 인권위 블랙리스트로 인권위 직원들을 솎아낸 후 정권의 입맛에 어울리는 인사들을 임명했으며, 4대강 사업에 반대한 단체와 인물을 탄압하기 위한‘4대강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문화예술계와 방송계 블랙리스트도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당시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연구자를 탄압한 역사학계 블랙리스트, 국립대 총장 인사 개입에 영향을 준 교육부 블랙리스트, 문화예술계와 과학기술계 블랙리스트가 말썽이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블랙리스트 사건은 반복됐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시끄럽다. 야당은 “정치보복 수사”라며 방어막을 펼쳤고,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수사하면 적폐청산이고, 윤석열 정부가 수사하면 정치보복이냐”라며 꼬집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는 ‘알박기 인사’논란이나 블랙리스트 사건은 사라져야 한다. 해결방안은 명확하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위원장의 말처럼 정권이 바뀌면 청와대와 정부, 여당 쪽에서 (공공기관장을) 추천하고 함께 일을 하고,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기관장 임기도 종료시키면 된다. 임기제 공무원의 임기를 대통령과 맞추는 법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이제껏 해법을 알면서도 제도정비를 않은 것은 무책임한 태도로 지탄받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의 정무직 인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 정부 때부터라도 알박기 인사로 새롭게 국정을 운영하려는 정부의 발목을 잡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생각해보라. 대통령제 정부에서 대통령이 바뀌었는데,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대통령 자문위원회 수장과 위원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킨다는 게 말이 될 법한 일인가.

불합리한 인사제도를 진작 바꾸지 않은 채 ‘알박기 인사’니 ‘블랙리스트’니 공방만 일삼는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