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가 만났다
윤순영 여성과 도시 대표

관광이란 걸으면서 먹고 보고 즐기는 것이다. 런던, 파리, 뉴욕, 동경 등 세계 유명 관광지가 모두 도시인 이유다. 도시에는 그 도시만의 색깔이 있고 냄새가 있고 그것이 골목에서부터 비쳐지고 풍겨진다. 대구가 근대 골목투어를 통해 세계적 관광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윤순영 여성과 도시 대표(전 대구 중구청장)는 골목을 통해 도심을 되살리고 골목투어를 이끌어낸 골목대장이다.

골목투어는 골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날것 그대로 외부인에게 노출되는 예민하고 위험한 게임이다. 윤 대표는 “관광객들이 보는 대구의 속살이 깊숙한 골목에 감추어진 빈곤과 한숨이어서는 안 된다”며 “(당시) 중구청이 주민들의 삶을 가꾸는 데 신경을 썼고 복지시스템이 가장 잘 정비된 지자체가 된 이유”라고 말한다. 그래서 골목투어는 주민들의 은근하고 사소한 행복까지 들여다보는 투어가 됐다.

 

전주 따로 있거나 폭력조직 얽힌 동성로 노점상 철거는 혁명

30%만 존치하고 철거해 관광객과 젊은이에게 동성로 돌려줘

근대골목투어, 코스마다 숨어 있는 역사 불러내 새 생명 입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등에 특별한 스토리 입히고 역사 기록

파괴와 재개발 대신 보존·재생으로 도심 되살리는 구상 ‘핵심’

- 여전히 바쁘고 신명나게 사는 것 같다.

△구청장 때보다 더 바쁜 것 같다. 청장 12년의 활동을 퇴임 후 4년 동안 다시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청장 재직 시 ‘내가 시민으로 돌아갔을 때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하고 있다.

- 여성과 도시는 어떤 성격으로 만들어졌나.

△우리가 사는 도시를 여성의 눈으로 보고 아름답게 꾸며 가는 것이다. 이런 일에 돈이나 행정적 지원이 따르면 무엇엔가 구속되고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회원 모두가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직 여성 아닌가. 우리가 받은 혜택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며 만들어진 것이 여성과 도시다.

- 고 박동준씨를 기리는 박동준 기념사업회 이사장과 갤러리 분도까지 맡고 있다. 대구를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열정이 청장 재직시절을 무색케 한다.

△박동준상은 매일신문과 공동으로 올해 3회째 패션 부분을 시상하게 된다. 첫해 패션, 다음해 미술부분 시상을 했다. 영남일보와 공동으로 기획한 미터상(美와 우리 사는 땅을 말하는 터의 합성어)도 올해 3회째 시상하게 된다. 그동안 TBC와 함께 도시다큐 재생 프로그램으로 외국과 한국의 골목과 도시재생이야기도 필름에 담았다. 외국은 덴마크 코펜하겐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국내에서는 서울과 부산 그리고 목포와 대구의 달성을 담았다. 서로 비교해 가면서 도시 재생과 그 터전을 주민들이 어떻게 꾸며 가는지 담아냈다.

- 골목과 도시재생 프로그램에 목포가 들어 있다.

△목포는 항구도시지만 우리 문화가 잘 보전돼 있더라. 군산에서부터 완주 목포로 이어지는 라인이 아주 색깔이 있었다, 주민들의 살아보겠다는 의지와 생명력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바닷가지만 근대의 일제 잔재가 많이 남아있고 특히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예능인을 많이 배출한 예도답다고 느껴졌다.

추억과 흔적을 소중히 여기는 풍토였다. 문화관광으로 먹고 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러웠다. 이곳 예술인들, 차범석 임방울 윤심덕 등 근대 예술인들의 맥을 지금도 이어오고 그 터전과 흔적을 보전 보존하고 있더라.

그런 도시들에 비하면 대구는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개성들이 강한 것 같다.

- 2006년 여성 전략 공천으로 경선을 거쳐 후보가 됐다. 정치인도 행정가도 아닌 사회운동가가 보수적 조직인 구청에 들어갔는데 기득권인 조직의 반발은 없었나.

△선거 때는 정치인이 아니니 순수하다고 보고 밀어주어 당선됐던 것 같다. 취임하니 과장급 이상 간부공무원 중 여성은 단 1명뿐이더라. 그런데 임기 말년엔 여성 간부를 30% 수준으로 만들었다. 재선 캐치프레이즈로 ‘일 잘하는 공무원 만들겠다’고 약속했는데 직원들이 따라주었고 주민들이 믿어줬다. 여성 공직자들이 텃세 센 남성사회에서 죽기 살기로 일하니 성적순 승진에서 제대로 평가받았던 것 같다.

- 취임했을 때 주위에서 중구청은 민주노총이라며 걱정들을 했다.

△나는 노동조합도 필요하다고 했고 그들도 녹을 먹는 공직자들이니 국가를 위해 일할 것을 믿었다. 무엇보다 공정을 내세웠고 그걸로 노조도 설득했다. 안 되는 것, 비합리적이고 불합리한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다. 한때는 출근길 팻말을 내걸고 따라다니며 반대 시위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대화와 설득을 통해 공정한 처리로 해결해 나갔다.

- 선출직 자치단체장에 여성이 없다. 어떻게 여성으로 3연임을 했나.

△지금까지도 여성 단체장이 없다는 것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단체장은 살림을 사는 것이고 살림살이는 여성의 섬세함이 더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섬세함과 어머니의 포근함으로 감동시켰다. 일 잘하는 직원을 일부러 드러내 표창할 순 없지만 세심히 관찰하고 기회를 포착해서 칭찬해준다. 직원 생일 파티를 해 주기도 했다. 그 직원이 소속된 부서를 무심히 찾아 회식 기회를 만들고 직원의 생일임을 조직원들에게 상기시키며 미리 준비한 케이크를 자르는 이벤트를 벌인다. 물론 나는 사전 준비한 행사지만 직원들은 감동하게 된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공감대를 만들어 감동하고 화합하게 만드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 구청장 12년 동안 중구청 문화를 바꾸었다고 한다.

△2006년 취임하니 구청 홈페이지가 4년 전에서 멈춰 있더라. 아무도 안 보고 관심도 없어서 갱신하지 않고 업그레이드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직 간부 중에서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공무원도 상당수 있었다. 아침마다 신문을 스크랩해서 올라왔다. 지금 세상에 인터넷으로 직접 검색하고 스크린 하는데, 이런 20세기식 문서를 없애고 줄이라고 했다.

이런 일들은 내가 재선되고 난 뒤 정부에서부터 전자결재 시스템이 도입되고 디지털화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환되는 과도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 국장급에서 9급 직원까지 누구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고 존대했다. 나이 든 간부들이 부하 직원들에게 하대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해 주면서 신뢰를 쌓아갔다.

- 대구를 관광객이 몰려드는 한국의 관광 도시로 만들었다. 대구 관광은 중구 골목에서 시작됐고 그래서 윤 대표를 골목대장이라 부른다.

△대구 중구는 재개발 재건축이 아닌 보존과 재생이 도시발전의 키워드가 돼야 한다는 것이 신념이다. 구청장이 되어 새 아파트를 짓는 대신 재생 보존하겠다고 했더니 지역민들부터 강력 반발했다. 나는 “현재 사는 집을 아파트보다 더 비싸게 만들어 주겠다”고 설득했고 또 그것이 가능해졌다. 그들이 나를 믿은 것은 동성로 노점상을 철거한 행정집행력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 동성로 노점상 철거로 완성된 동성로 공공디자인의 성공은 어떻게 시작됐고 또 추진됐나.

△동성로 노점상 철거는 혁명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중구에는 국회의원도, 구청장도 재선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3선을 했다. 내가 재선을 하게 된 것은 동성로 노점상 철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번 하고 그만 둔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도대체 지금까지 정치인 시장 구청장들은 무얼 했나 싶더라. 동성로 노점상들을 어떻게 저대로 둘 수 있나. 만약 불이라도 나면 소방차도 진입 못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든 철거해야 했다. 계획을 발표하자 노점상은 물론 시민단체들까지 그들을 비호하면서 반대했다. 전국노점상들도 가세했다. 그러나 노점들을 철저히 조사했더니 노점들은 전주가 따로 있거나 외제차를 모는 기업형도 있었고 폭력조직도 가세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재산등록 1억원 이하의 노점상 30%는 정비해서 존치하고 나머지는 전부 철거시켰다. 그 동성로를 관광객과 젊은이들에게 돌려줬다.

- 어떤 정치인도 해결하지 못한 ‘방안의 고릴라’ 같은 노점상을 어떻게 정비할 생각을 했나.

△청장이 되기 전에 이상화 고택 보존사업을 한 경험이 있다. 고택 앞으로 소방도로를 뚫겠다기에 이를 막고 고택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언론과 시민들의 도움으로 고택을 살릴 수 있었다. 그 때 살펴보니 중구에 정말 골목이 많았다. 골목의 역사를 찾아 기록하고 스토리를 살려 골목 본래의 기능을 되찾는 것이 골목을 살리고 대구를 살리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를 구청장이 되자 실천에 옮긴 것이다. 중구는 파괴와 재개발이 아닌 재생으로 정체성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이 때 갖게 됐다. 선출직이 표를 의식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 대구 근대골목 투어 1, 2, 3, 4, 5코스를 만들었다. 왜 하필 골목인가.

△도시는 우리 눈이 보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 도시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아파트도 300세대 이상 건축은 대구시장 권한이어서 구청장은 관여에 한계가 있다. 또 4차선 도로 이상은 대구시장 권한이고 구청장은 2차선 이하 골목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대구 중구는 골목이 그렇게 많고 또 골목마다 스토리가 많았다. 대구 문화재의 45%가 중구에 있다는 것도 실사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직선은 곡선으로 바꾸면 부드럽고 유순해진다. 그런데 우리는 굽은 길을 바로 펴려고만 했고 좁은 길을 넓히려고만 했다.

구불구불하게 굽은 길을 가 보아야 천천히 걷는 법과 뒤를 돌아보는 여유도 부릴 수 있다. 모퉁이를 돌아보아야 가다가 쉬는 순간을 짚어낼 수 있다. 막다를 길을 만나 보아야 잘못 들어선 길을 깨달을 수 있다. 길도 삶도 구불구불해야 재미있다.

오래되고 낡은 골목에는 저마다의 특별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골목마다 숨어 있는 역사를 현재로 불러내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과 행정이 만나는 접점이다. 근대골목,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등 골목에 스토리를 입히고 역사를 기록했다. 파괴와 재개발 대신 골목에 숨어 있는 문화 예술적 가치를 재발견하여 되살리는 도심재생사업이 구정의 핵심이 된 이유다.

- 지금 단체장 등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구청장 퇴임 후 윤 대표에게 선출직에 출마하라는 요청은 없었나.

△구청장은 3연임 제한이 없다면 한 번은 더 하고 싶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나 시장 직은 생각 없다. 지난 번 보궐선거에도 나오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착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더러 ‘무소속으로 나와도 승산 있다’며 다시 한 번 중구와 대구를 위해 일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봉사는 구청장 12년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또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이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역과 지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내 소명이다.

- 지역의 여성 정치지망생들에게 충고해 준다면.

△남성문화가 만연한 대구다. 지연 학연이 활개치는 사회에서 여성이 선택받기 위해서는 남성보다 2배 3배 노력해야 한다. 평소 자신을 부끄럽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또 도전정신이 있어야 한다. 지역 정서가 여성에게 힘들지만 그렇다고 홍시가 떨어지길 기다려서는 차지할 수 없다.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윤순영(尹順永) (사)여성과 도시 이사장

상주여고. 경일대 경영학과. 중앙대 문화예술행정학 석사. 대구가톨릭대학교 예술학 박사

과정 수료.

전 대구시 중구청장(2006 ~2018),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 중구 도심재생문화재단 이

사장. 현 여성과 도시 이사장, (사)박동준기념사업회 이사장. 갤러리분도 대표, 아름다운가

게 대구 대표, 대구아트페어 운영위원, 대구국립박물관 자문위원장. 지방자치행정대상

(2018), 올해의 지방자치 CEO 대상(2015), 대한민국 글로벌리더 대상(2016, 2017)

대구근대골목은 2012 한국관광의 별(장애물 없는 관광자원)에 선정됐고 저서 ‘골목, 별이

되다’(2014)는 교보문고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5남매의 막내딸로 사촌형제만도 30명이 넘는 대가족 속에서 아버지의 귀염과 기대 속에

유년기를 보낸 문화기획가이자 사회운동가이다. 자신은 “아버지에게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법과 카리스마를 물려받았고 평생을 대가족 맏며느리로 살아온 어머니의 지지로 당

당하고 멋진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고 술회한다.

/이경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