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독일의 제8대 총리 메르켈은 ‘통합의 리더십’으로 16년간 협치를 통해 조국을 세계의 중심국에 올려놓고 스스로 물러났다. 떠나는 총리에게 독일인들은 ‘무티(Mutti·엄마)’를 환호했고, EU회의에서 정상들은 기립박수로 그녀를 환송했으며, 미국의 전 대통령 오바마는 “당신과 친구여서 행복했다”고 헌사(獻辭)했다. 독일은 물론이고 세계인의 감사와 존경의 박수 속에 떠나는 아름다운 퇴장이었다.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트럼프는 4년 임기 내내 ‘갈라치기 정치’를 했다. 인종·종교·지역을 갈라 치고 증오를 부추김으로써 권력을 연장하려 했던 ‘분열의 리더십’이었다. 재선에 실패하자 대선 불복과 국회의사당 점거를 선동했던 ‘비루(鄙陋)한 패배자’였다. 오죽하면 하원에서 두 차례나 탄핵을 가결했겠는가. 트럼프는 경쟁자였던 바이든의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전례도 없는 ‘셀프 환송식’을 거행한 후 볼썽사납게 떠났다.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우리 대통령들의 정치행태는 메르켈이 아니라 트럼프에 가까웠으니 아름답게 퇴장할 수 없었다.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末路)는 망명·수감·시해·자살·탄핵 등 불행과 비극의 연속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진영정치’와 ‘내로남불’로 나라를 완전히 두 동강 내어버렸다. “퇴임 후 잊혀 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의 회한(悔恨)서린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아름다운 퇴장도 불행한 퇴장도 모두가 재임 중의 권력행위에 대한 인과응보(因果應報)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메르켈처럼 박수 받으며 퇴장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권력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라. 권력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권력자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의지’가 아니라 ‘소명의식’이다. 게다가 권력은 본래 내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이 아닌가. 그러니 목에 힘주지 말고 늘 겸손하라.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집권 20년을 호언장담했던 오만한 정권은 스스로 쳐놓은 독선과 아집의 덫에 걸려 5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권력은 마약과 같으니 취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권력에 취하면 초심을 잃게 되고, 초심을 잃으면 아름다운 퇴장을 할 수 없다. 권력의 시작과 끝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당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살아갈 때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권력도 반드시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정도(正道)정치를 하고 아름답게 퇴장할 수 있다.

우리시대의 스승, 법정(法頂) 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는 그 시점, 그 자리에서 도리와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권력의 아름다운 퇴장은 임기가 끝나는 그 순간의 현상이 아니라 재임기간의 모든 정치행위에 대한 총결산으로서 주어지는 감사와 존경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