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클리너’
세라 크래스너스타인 지음
열린책들 펴냄·에세이

“당신의 고통을 존중합니다.”

죽은 쥐, 널브러진 파편, 두려움과 함께 사는 동물 조련사, 우발적인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을 거둔 젊은 여성, 40년 동안 쌓아 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잠을 자는 70대 여성, 거실에서 조용히 피를 흘리며 죽어 간 버스 운전기사….

‘트라우마 클리너’(열린책들)는 특수 청소 서비스 전문 회사를 운영하는 트라우마 생존자 샌드라 팽커스트의 삶과 내면을 다룬 에세이다. 호주의 논픽션 작가 세라 크래스너스타인은 샌드라가 산 자와 죽은 자의 집에 질서를 찾아주는 과정과 지금껏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한 그녀의 특별한 삶을 담아냈다.

작가는 4년 동안 샌드라를 따라 20여 곳의 현장을 방문하고 취재하며 그녀의 삶을 온전히 되살려냈다.

트라우마 클리닝 혹은 특수 청소 일은 뭔가 음울하고 괴짜 취향의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른 직업만큼이나 전문성을 요한다. 무엇보다 샌드라는 탁월한 공감력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집에 스며들어 있는 악취를 없애고, 괴상한 포르노물과 사진과 편지를 버리고, 비누와 칫솔에 붙은 그들의 DNA까지 없애지만 사람을 지우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반려동물로 삼은 죽은 쥐를 내다 버릴까 예민해진 고객을 안심시키고, 40년 동안 치우지 않은 집의 주인과 수다를 떨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오래된 청구서를 정리한다. 침구, 텔레비전, 가구 등 물려받을 유족이 없어 남아 있는 물건은 따로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한 곳에 무료로 설치해 주기도 한다.

냉대와 따돌림, 차별과 폭력으로 얼룩진 샌드라의 삶은 언뜻 평범해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여러 가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는 면에서, 그리고 내면의 욕구를 인지하고 자기다운 삶을 찾아 나간다. 작가는 샌드라의 삶을 취재하며 활기찬 그녀의 모습 이면에, 힘든 일을 티 내지 않는 문제,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문제, 누군가에게 정착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문제 등을 발견한다. 하지만 샌드라는 타고난 확신과 놀라운 회복력으로 자신의 삶을 가꿔 나갔다. 그녀는 침묵을 두려워하고 소음이 있어야 잠들 수 있지만, 그녀의 집에는 꽃이 가득하고 아늑한 소파와 향기 좋은 비누가 있다. 트라우마는 그녀의 기억 속을 배회하지만, 새로운 기억과 계획으로 삶을 채워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함께 지워 버린 샌드라의 삶을 복원하고 마음 깊숙한 곳까지 꿰뚫어 봄으로써 샌드라와 독자 사이에 인간적 유대 관계를 맺어 준다. 작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취약성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지만, 취약성을 드러냄으로써 연민 넘치는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샌드라의 활기찬 모습 이면에는 부모에게 학대받고 성소수자로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아픔이 있었다. 저자는 샌드라의 청소 현장과 그 자신이 갖가지 트라우마의 생존자인 샌드라의 인생역정을 번갈아 조명한 뒤 이렇게 말한다.

“트라우마의 반대가 트라우마의 부재는 아니다. 트라우마의 반대는 질서와 균형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중략) 빛이 가득 들어오는 그 집에서도 샌드라의 과거 최악의 기억들은 여전히 이 구석 저 구석을 배회한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은 이제 대부분 공간을 메우고 있는 좋은 기억과 새로운 계획, 살아온 삶과 살고 있는 삶에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가 없다.”

세라 크래스너스타인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2018년 빅토리아 문학상, 논픽션 부문 빅토리아 프리미어 문학상, 오스트레일리아 출판산업상ABIA ‘올해의 일반 논픽션 상’, 도비(Dobbie 문학상), NSW 프리미어 문학상 ‘더글러스 스튜어트 상’(공동 수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오스트레일리아 국립전기상, 영국 웰컴 문학상 등에서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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