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의 세계사’

도미닉 프리스비 지음
한빛비즈 펴냄·인문

동서양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한 인류 최대의 정복 군주 칭기즈칸은 금나라를 정복한 다음 다른 정복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을 모두 말살하려고 했다. 이때 그 곁의 참모가 “죽은 농민은 세금을 내지 못 한다”고 진언해 수많은 중국인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렇듯 예나 지금이나 세금은 전 세계 모든 정복자의 주요 사업이다. 칭기즈칸의 이야기는 세금이 국가 권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일례에 불과하다.

영국의 금융 전문 작가인 도미닉 프리스비의 세금이야말로 인류의 역사를 좌우하는 첫 번째 이유라고 단언하는 책 ‘세금의 세계사’(한빛비즈)가 나왔다. 세금이 문명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시각을 지닌 저자는 한마디로 조세제도는 국가의 운명, 즉 국민의 번영과 빈곤, 자유와 억압, 만족감과 불만을 결정한다고 본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오늘날의 디지털 경제까지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보여주며 세금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강조한다.

인류 역사의 모든 중요한 사건에는 늘 세금이 얽혀 있다.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은 마리아와 요셉이 그곳에 세금 신고를 하러 갔기 때문이며, 세금을 내는 새로운 노동자계급이 출현한 것은 흑사병으로 중세의 봉건제도가 사실상 무너졌기 때문이다. 여성의 참정권이 허용된 것도 제1차 세계대전 중 여성들이 공장에 투입돼 그들이 소득세를 납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라미드부터 백악관까지 인류의 주요 건축물들 또한 세금이 없었다면 짓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 만리장성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되기도 했지만 비단길을 따라 중국을 드나드는 물품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전쟁, 재난, 재해 뒤의 재건 과정에도 세금이 항상 등장한다. 세금이 없었다면 인간은 달에 첫발을 내딛지 못했을 것이다.

세금은 고대 수메르제국부터 권력의 근간이었고, 수많은 전쟁과 혁명의 단초였다. 프랑스에서는 소금 가격의 열 배를 물리는 소금세가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러시아혁명의 배경에도 황제가 소작농에게 부과한 세금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전쟁에는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금은 전쟁비용을 버는 동시에 선전·선동의 도구로 쓰였다. 미국은 1942년 소득세 과세 대상을 대폭 늘리면서 승리세(Victory Tax)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치 독일은 세금을 이용해 유대인을 재정적으로 말살하고 전쟁비용도 벌었다. 유대인은 20%의 부유세를 물고, 국내외 재산등록을 누락하면 전 재산을 몰수당했다. 나치가 전쟁에서 쓴 돈의 3분의 1은 압수한 유대인들 재산이었다.

종교 또한 그러하다. 징벌 수준의 세금과 강제노동의 속박에서 벗어나 시나이반도로 탈출한 히브리인들은 역사상 최초로 세금을 피해 탈출한 난민으로 기록되며, 십일조는 기독교의 역사와 함께한다. 이슬람교가 7~8세기에 빠르게 퍼질 수 있었던 것도 이슬람의 세금 제도로 모두 설명된다. 죽음, 세금, 이슬람 중에서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영국 헌법의 시초인 마그나카르타가 탄생한 비화, 세계대전의 승패를 가른 소득세, 나치가 유대인에게 저지른 차별적 조세정책,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채무로 몰락한 영국 등등 이 책은 세금이 역사와 얽히고설키며 인류 문명과 늘 함께해왔음을 보여준다.

저자 도미닉 프리스비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경제로 모든 것이 대전환하고 있는 지금, 세금 문제를 다시 전면에 부각해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한다. “세금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다. 역사는 어리석고 잘못된 사고방식에서 나온, 시대에 맞지 않는 세금이 초래하는 끔찍한 결과를 반복하여 보여준다. 이제는 21세기에 맞게 새롭고 더 나은 조세제도가 필요하다. 조세개혁은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다. 세금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세금이 출발점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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