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1969 포항 죽도시장 人 스토리
열혈 청년상인 ‘까치얼음’ 김재원 대표

5년간 숨 가쁘게 달려오며 죽도시장에서 청춘을 보낸 김재원 대표.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만으로 열아홉 살에 해병대에 입대해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제대하고는 대학을 마쳤다. 꿈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던 스물넷 젊은이. 그런데, 이게 무슨 일? 죽도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아버지가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졌다.

누군가는 아버지가 해오던 일을 맡아야 했다. 스스로는 선택한 바 없음에도 ‘장남’이라는 묵직한 책임감이 김재원(29)씨를 억눌렀다. 그러나, 망설이지도, 우물쭈물 피해가지도 않았다.

그로부터 5년. 많은 것이 변했다. 아픈 아버지를 속이고 돈을 뜯어가려던 이들이 보란 듯 물려받은 가게를 정상화해 성장시켰고, 아들을 믿는 엄마와 여동생의 든든한 기둥이 됐다. 이상은 까치얼음 김재원 대표의 짤막한 ‘청춘 이력서’다.

굳이 범주에 포함시키자면 김 대표는 이른바 ‘MZ세대’다. 진지함보다는 재미에, 복잡한 과정을 생략한 편리함에 휘둘리기 쉬운 나이. 그의 또래 친구들은 희생하는 삶보다는 ‘즐기는 삶’에 익숙하다. 그걸 탓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에는 각기 다른 색채가 있고, 검은색인지 흰색인지, 혹은 푸른색인지를 선택하는 건 개인의 몫이다. 젊은 사람이 극히 드문 전통·재래시장에서 자신의 모든 걸 걸고 한판 승부를 보고 싶었던 게 김재원 대표의 선택. 자신이 선택한 색채의 길을 걸은 짧지 않은 5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아버지 대신 맡은 가게, 정상화 때까지 5년이 걸렸습니다. 거래처와의 약속을 지키려 직접 얼음 배달을 나가고 하루 10시간 이상 일을 하다보니 현대화 시스템 갖춘 얼음창고 지을 땅을 샀고, 할리 데이비슨 하나 장만했네요. ‘고객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장사의 원칙 끝까지 지켜내겠습니다.

△ 아직 제주도 여행 한 번 못해본 ‘20대 청년 상인’

얼음을 판매하는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은 2017년부터 2022년 오늘까지 김 대표는 제대로 편하게 쉬어본 적이 없다.

국경일과 자신의 생일에도 거래처의 주문이 있으면 두말없이 얼음을 배달했다. ‘그래도 일요일 하루는 내 시간을 갖자’고 생각한 건 불과 1년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요즘 20~30대가 방학이나 휴가 때면 당연한 듯 즐기는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아직 제주도도 한 번 다녀오지 못한 김 대표.

“제주도는 배 타고 가는 것 아닌가요? 포항에도 제주도 가는 비행기가 있어요?”라고 묻는 그의 진지한 얼굴과 어투에 기자는 조금 놀랐다.

스물넷에서 스물아홉까지, 김재원 대표는 워커홀릭(Workaholic·일 중독자)으로 살았다. 자신의 선택이고, 가끔은 그걸 즐기기도(?) 했으니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다.

열심히 살아온 삶에는 보상이 따르는 법. 위생적이고 현대화된 시스템으로 얼음을 만들고 보관할 창고를 지으려고 죽도시장 인근에 조그맣게 땅을 샀고, 얼마 전엔 오토바이 애호가들 사이에서 ‘꿈의 바이크’로 불리는 할리 데이비슨(Harley-Davidson)을 계약했다.

오토바이의 가격? 어지간한 중형 승용차보다 비싼 4천만 원이라고 했다. 그 외에도 궁금한 게 많았다. 그래서 물었다.

-5년 전 얼음가게를 이어받던 시기의 상황은.

“아버지는 쓰러졌고, 주위엔 좋지 못한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장남인 내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것, 둘째는 아버지가 고생해서 키워온 가게를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 결심이 나를 지켜준 힘이 됐다.”

-아버지가 ‘이것만은 지키며 장사를 해라’는 이야기를 했을 법하다.

“신뢰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거래처와의 약속은 지키려고 한다.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아버지의 사례를 잘 알기에 웃으며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더 조심하고 있다.(웃음) 사기꾼은 절대 먼저 화를 내지 않더라.”

-아버지 때와 비교해 까치얼음은 얼마나 성장한 건가.

“현재 거래처는 100군데 정도다. 절반쯤은 아버지가 운영할 때 거래하다가 교류가 끊긴 걸 내가 복원했고, 나머지 절반은 개척한 거래처다. 배달하는 직원분이 있지만, 아무리 바빠도 가능하면 내가 직접 얼음 배달을 나가려고 한다. 왜냐하면 예전부터 나를 격려해주고, 우리 가게 얼음을 사용해준 고마운 분들의 얼굴을 자주 보고 싶어서다.”

△ 하루 13시간, 바빠서 밥도 못 먹는 여름이 싫지만…

‘이 추운 겨울에 얼음을 어디에 쓸까?’라고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김 대표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는 얼음은 크게 ’식용 얼음‘과 ’비식용 얼음‘으로 나뉜다.

이름 그대로다. 비식용 얼음은 먹지 못한다. 그것들은 죽도시장 생선 아래 깔리는 게 대부분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상인들이 판매하는 물고기 등 해산물의 신선도를 유지해주는 것.

다음은 식용 얼음. 이건 사람이 먹을 수 있다. 아이스 커피와 아이스 티(Ice Tea)에 들어가고, 눈처럼 갈아서 달콤한 팥빙수도 만든다.

잘 알다시피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영하 10도의 추위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을 고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을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커피)라고 부른다던가? 어쨌건.

김재원 대표의 까치얼음이 취급하는 건 식용 얼음이다. 포항 곳곳에 자리한 대형 마트와 구멍가게까지가 까치얼음의 거래처. 여름은 물론 바람 매서운 1~2월에도 김 대표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유다.

-아무리 그래도 여름에 더 팔리는 게 얼음 아닌가.

“맞다. 한여름엔 아침 8시부터 배달을 시작해 밤 10시가 가까워야 일이 끝난다. 점심과 저녁을 거르는 경우가 흔하다. 요즘엔 집집마다 아이스 박스 하나 정도는 다 있다. 바캉스 시즌이면 거기에 고기와 음료수, 술 등을 시원하게 보관하기 위해 얼음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러는 게 한두 집이 아니다. 그 시기엔 조금 과장을 보태면 얼음을 만지면서도 땀을 바가지로 흘린다.(웃음)”

-당신이 지키고 있고 앞으로도 지켜갈 장사의 원칙은.

“대형 마트는 얼음을 대량으로 구매한다. 반면 동네의 조그만 가게는 거래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다른 얼음가게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두 군데 모두에 같은 가격으로 얼음을 공급한다. 차별하지 않는다. 그건 처음에 일을 시작하면서 고객과 한 약속이니까.”

△ 죽도시장에서 할리 데이비슨 탄 젊은이를 보거든

앞서도 말했지만, 전통시장에서 자신의 미래와 비전을 설계하는 ‘청년 상인’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게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래서다. 김재원 대표에겐 ‘시장 친구들’이 거의 없다.

“아주 작은 성공의 입구에 들어섰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5년간 흘린 땀과 쏟은 열정의 대가로 ‘신뢰할 수 있는 얼음 공급자’라는 김 대표의 자리는 확고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해봤다.

“직장생활이 아닌 작더라도 자기만의 사업으로 성공을 일구고 싶은 20~30대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요?”

“긴 말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의 모두를 걸어야 합니다. 인생과 생애를 걸지 않고서 이룰 수 있는 성공이 세상에 있을까요? ‘공짜 점심’을 바라고 있다면 그건 젊은이답지 않습니다.”

스물네 살,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청년 상인으로 출발할 때부터 가졌던 김 대표의 꿈이 있었다.

서른 살이 되면 20평쯤의 깔끔한 냉동창고를 세워 현대화 된 시설에서 만들어진 깨끗한 얼음을 고객들에게 주고 싶다는 것.

곧 만 서른 살이 되는 김 대표의 꿈이 70%는 이미 이뤄졌다. 거기에 보너스처럼 더해진 게 4천만 원짜리 할리 데이비슨.

혹여, 죽도시장에 갔다가 커다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김재원 대표를 본다면,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에 다가서고 있는 그의 어깨라도 한 번 두드려주시길.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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