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경북도청본사취재본부장
이창훈 경북도청본사취재본부장

중국 오지의 한 시골길을 버스가 달리고 있다. 길가에서 차를 기다리던 청년이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운다. 2시간이나 기다렸다는 말에 젊은 여성 운전사는 친절한 미소를 짓는다. 이후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다시 2명의 남성을 태웠고, 잠시 뒤 이들은 강도로 돌변한다. 두 강도는 승객들의 금품을 모두 빼앗고 폭행까지 한다. 그러다 여성 운전사를 훑어보고는 성폭행을 하기 위해 강제로 차에서 끌어 내린다. 청년은 승객들에게 그냥 두고 볼 거냐고 소리치지만 승객 모두 고개를 돌린다. 청년 혼자 강도들을 막아 보려 하지만 오히려 강도의 칼에 찔려 부상만 당하는 등 두 사람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운전사는 승객들을 말없이 돌아본다. 뒤늦게 청년이 버스에 타려 하지만 운전사는 청년을 매몰차게 버려둔 채 버스를 몰고 떠나 버린다. 허탈한 청년은 다른 차를 얻어 타고 길을 가는데, 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경찰이 보인다. 청년이 탔던 44번 버스가 교각을 들이받고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진 것이다. 운전사와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는 경찰의 말에 청년은 허탈한 미소를 짓는다. 이 여성 운전자는 이 버스에서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사람은 청년 한 명이라고 생각했고, 나머지 모두는 자신이 선택한 죽음의 길에 동반시켰다. 한마디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비겁한 방관자의 최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내용은 중국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으로, 지난 2001년 홍콩에서 영화 ‘버스 44’로 제작돼 알려졌다. 러닝타임 11분 밖에 안되는 독립영화지만 너무나 강력한 메시지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지금 우리나라는 향후 수십년을 좌우할 대통령을 뽑는 중요한 시기에 도래했지만 국민은 어느 때보다 참담한 상태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골라야 하나 후보마다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있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여당의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비리 의혹에다 형수 욕설, 여배우 스캔들, 최근 아들의 도박 혐의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시장·군수 후보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의 많은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 야당의 윤석열 후보는 검찰 총수까지 올랐지만, 아내와 장모 리스크에 공정과 정의라는 본인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고, 어정쩡한 사과 등 대통령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를 기대하기는 부족해 보인다.

선거일이 다가오고 있지만 국민을 위한 정책 대결은 보이지 않고, 서로의 치부만 들추어내는 네거티브가 극에 이르고 있다. 사태가 이렇다보니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로 상당수의 젊은층을 비롯 중장년층도 투표에 무관심해 지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다. 하지만 후보가 우리의 마음에 들지않을수록 국민이 이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 44번 버스의 방조자가 되어 함께 자멸의 길을 걸을 수는 없지 않은가.

플라톤은 말했다. “정치를 외면하다 보면 오히려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고. 문득 랭보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오 성(城)이여, 계절(季節)이여,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