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낙률시인·국악인
오낙률
시인·국악인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산에서 혹은 전망 좋은 곳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환호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행복을 기원하기도 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누가 시키는 것도, 손잡아 끄는 사람도 없는데 사람들은 스스로 그렇게 해맞이명소를 찾아 길을 떠난다. 그뿐만 아니라 음력 설날엔 부모님과 조상을 찾아 새배 인사와 제사를 올린다. 이렇게 일 년에 한 번 특별히 시간을 쪼개어 태양 앞에서 또는 부모님과 조상님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의 예를 올리는 행위는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의식 행위이다.

세상 모든 생명체가 태양 빛을 주 에너지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많은 생명체 중에 일 년에 한 번씩 최대한 태양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으로 다가가 태양을 바라보며 감사 기도를 올리는 생명체는 오직 인간뿐이다. 따라서 그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커다란 지혜가 되어 인간만이 문명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존재로서 그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능력으로 인정받아 만물의 영장이라는 위치를 태양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은 아닐까 싶다.

단언컨대 우리 생명체에게 있어서 물은 아버지의 사랑 같고 불은 어머니의 사랑 같다. 생명이란 존재는 물을 절대 필요로 하는 존재로서 물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물도 태양이 따듯하게 데워주지 않으면 머금을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해서 물과 태양과 인간과의 관계는 마치 아버지가 들에 나가서 양식을 구해오면 그것으로 어머니가 밥을 지어 자녀들에게 나눠주는 일과 같은 이치이다. 진정 그런 연유로 우리 인간들은 일 년에 한 번이나마 태양을 바라보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종교 등에서 흔히 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종교나 철학 등의 영역에서 인용으로 끌어다 쓰는 것일 뿐, 원래의 뜻은 생명의 기본 요소를 일컫는 말인듯 싶다. 생명을 구성하는 물질을 큰 틀에서 보면 물과 불과 흙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해서 삼위일체라는 말은 그 세 가지의 물질이 조합하여 제자리를 찾으면 하나의 생명체가 완성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흙 한 줌 가져와서 조금의 물을 부어 양지바른 곳에 한참 놓아두었다가 이것도 생명체냐고 필자에게 묻는다면 필자는 잠시나마 할 말을 잃을 것이다.

어느새 신축년 한 해가 저물고 검은 털빛의 수호랑이 해, ‘임인년’이 동녘으로부터 밝아오고 있다. 인파로 발 디딜 곳 없던 민족의 해맞이 명소 호미곶의 풍경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로 인해 예전의 풍경과는 사뭇 다를 듯하다. 어느 서양화가의 그림에서 보았을까. 광활한 벌판 아득히 해바라기 꽃밭이 펼쳐져 있고 곡괭이를 든 남녀가 반쯤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길 머문 곳, 이글거리는 태양이 수많은 해바라기꽃을 내려다보며 다정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왠지 요즘은 그런 풍경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