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요즘 ‘깐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국영화 ‘오징어게임’에서 나오는 ‘깐부’라는 단어가 주는 친근감 때문이다.

필자도 어려서 구슬치기, 딱지치기, 말타기 등의 놀이를 하면서 같은 편 친구를 ‘깜보’라고 부르던 기억이 난다.

깐부는 깐보, 깜보, 깜부 등 여러 가지 변형되어 지역마다 다르게 불리운다.

깐부의 어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영어의 ‘콤보(combo)’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늘 밖에서 같이 뛰어놀아 가무잡잡해진 친구를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이라는 설은 1986년 나온 까무잡잡한 장두이 주연의 ‘깜보’라는 영화에서 설명되기도 했다.

혹시 일본이나 중국이 자기네 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근거는 중국의 고사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중국어 발음 ‘꽌보’나 일본어 발음 ‘깐보(かんぽう)’가 변해서 생긴 말이라는 설이 뒷받침 한다. 일본어 지분을 가르키는 ‘카부(株)’가 어원이라는 설까지 등장한다.

어원이 무엇이든 간에, 재미있는 것은 ‘깐부치킨’이라는 치킨 프랜차이즈가 ‘오징어게임’ 이후 엄청난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깐부치킨 창업자가 어릴 때 고향에서 쓰던 말을 한번 써본 건데 ‘오징어게임’으로 대박을 친 것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오징어게임’ 영화에서 주역의 한 명으로 활약한 배우 오영수가 깐부치킨 광고모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오영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깐부치킨 광고모델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한 이유에 대해 “‘깐부’는 ‘오징어 게임’의 주제에 가까운 단어”이며 영화 중에서 인간관계에서의 신뢰와 배신 등등이 함축된 단어인데 광고에서 이 깐부를 직접 언급하면 작품에서 연기한 장면의 의미가 흐려지지 않을까 우려되어 고사했다고 한다.

광고모델은 곧 큰 수입을 의미하는데 광고모델이 되기 위해 애쓰는 연예계에서 신선한 충격이다. 예술을 존중하는 그런 모습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그렇게 ‘깐부’는 소중한 단어이고 영화 속에서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니꺼 내꺼가 없는 거야.”라고 대화가 오고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깐부정치’를 생각하게 된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 간의 거친 말로 상대를 연일 공격하고 있다. 아직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야당의 예비후보들도 토론회에서 상대를 험한 말로 공격하는 게 다반사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깐부라는 말이 등장해 화제다. 야당의 어느 예비주자는 “우리 깐부 아닌가요? 치열한 경쟁은 하되 품격 있게, 동지임을 잊지 맙시다”라 했다고 한다.

또 여당의 원내대표도 “오늘부터 우리 모두는 깐부, 네것 내것 없고 네편 내편도 없다, 우리만이 있을 뿐”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참 좋은 말이고 멋진 발언이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정치가 ‘깐부 정치’를 한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CNN TV에 비추어진 정치 선진국의 국회의 청문회나 토론회를 보면 상대를 존중하면서 정제된 언어로 토론을 하는 ‘깐부정치’를 종종 보게 된다.

험한 말과 인신 공격으로 점철된 한국정치에서 ‘깐부정치’를 언제쯤 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