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수 수필가
강길수 수필가

젊은 날, 성당에서 ‘레지오 마리애’란 소공동체 활동을 시작했었다. 창단 단원으로 출발하여 오늘 해단할 때까지, 오랜 기간 참여했다. 해단 사유는 단원들의 수가 줄어, 더는 소공동체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원이 줄어든 원인은 개인 사정도 있었지만, 다른 지역 전출이 주된 요인이었다. 전출은 타 시도로 가는 경우와, 같은 지자체에 살면서도 주거지 이동으로 거리가 멀어져 떠나는 경우의 두 가지로 대별 되었다. 우리 성당이 기존 시가지에 있어서 전입자보다 전출자가 많은 요즈음의 사회 여건도 작용했다.

새 교우 영입, 혼성체제 도입, 상위 단체 지원요청 등 자구책을 쓰면서 버티어 왔다. 40주년을 반년 남짓 앞두고, 남은 단원이 한 명밖에 안 되었다. 결국, 해단하기로 했다.

젊을 땐 인구가 유입되며 선교가 잘 되어, 분가(分家)를 걱정해야 할 때도 있었다. 간부 맡을 이가 모자라서다. 하지만, 반세기도 안 된 해단 앞에서 ‘긴 세월 동안 함께해 고마웠고, 행복했다’라고 카톡 인사를 보냈다. 격세지감과 회한, 어떤 슬픔도 가슴에 여울져 왔다.

알파와 오메가란 말이 있다.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자 알파(α)와 끝 자 오메가(ω)를 말한다. 주로 그리스도교에서 신앙대상의 영원한 존재성을 말할 때 많이 사용해 오다가, 요즈음은 일반적으로도 많이 쓰고 있다. 일반적 뜻은 처음과 끝 혹은, 어떤 무엇의 전부를 뜻하는 말이리라.

무릇 만사는 시작과 과정, 그리고 끝이 있다.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 살다가 죽는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먼지 한 알부터 흙, 돌, 바위, 지구 등 자연은 물론, 나아가 원자에서 태양계, 우주에 이르는 물질계도 같다. 바로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명체와 물질계의 존재 양태는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 안에 있다’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당연히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에는 ‘시간’이란 야릇한 존재, 변수 또는 개념이 그 몸이다. 시간은 물리학이나 철학에서 끊임없이 다루어 왔지만, 명쾌한 답은 아직도 못 얻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생로병사의 과정을 살면서, 거부할 수 없이 처절하게 당하며 겪어내야 할 괴물이 시간이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한다’라든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란 속담만 보아도 그렇다. 시간의 절대 폭력 앞에 던져진 것이 모든 존재이다. ‘유종의 미’란 말도 있다. 목표를 끝까지 잘 이루어 내는 일이리라. 그렇다면 앞 소공동체 활동은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일까.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에서 보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 무엇도 언젠가는 끝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출발한 다른 단체는 계속되므로 그렇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결국, 만사는 꿈보다 해몽이란 말인가.

오래 활동한 성당 소공동체의 알파와 오메가 법칙 결과가 이럴진데, 사회와 국가의 그것은 어떠해야 할까. 정권이 나라를 한 번도 겪지 못한 길로 막무가내 끌고 가는 우리 사회…. 그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이, 주권자 국민인 내게 실망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