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자리’

김우재 지음·김영사 펴냄
인문·2만4천800원

신간 ‘과학의 자리’(김영사)는 과학의 사회적 의미와 과학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최초의 논의이자 현장 과학자의 과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치열한 고민이 담긴 역작이다.

저자인 김우재 하얼빈공업대학교 교수는 한국 과학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과학자이자 패스파인더로 꼽힌다. 연구실이나 실험실에서 연구에만 매진하는 것이 과학자의 미덕이라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김우재 교수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다. 그는 인문학자들조차 압도하는 철학적, 역사적 지식으로 중무장한 채 다양한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라는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는 낯선 과학자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과학기술 시대, 왜 한국에는 과학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고, 우주로 인공위성을 쏘는 나라에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무슨 의미일까? 오늘날 한국 사회는 과학기술과 과학지식으로 가득한 공간이지만 ‘과학적 삶의 양식’과 ‘과학문화’가 정착되지 못했고, 그 결과 역설적으로 과학 부재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과학을 도구가 아닌 사유의 방식으로,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현재의 과학 부재를 극복하고 ‘과학적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김우재 교수가 말하는 ‘과학적 삶의 양식’이 존재하는 사회는 과학자가 곧 철학자이기도 하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과학자가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인정되는 공간이다.

김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과학은 절대적 권위를 지니지만 이는 과학지식이 가지는 권위일 뿐, 과학 그 자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과학’은 문화가 아니라 지식으로 통용되고, ‘과학자’는 지식인이 아니라 기술인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날 선 목소리로 과학을 산업발전과 권력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정치권력과 과학의 외피를 빌려 과학적 권위만을 전유하는 ‘인문 좌파’ 양쪽 모두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서구 사상사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상호보완과 경쟁을 통해 진보해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극단적 이분법이 통용됐고, 인문학자가 모든 사회적 논의를 독점한다. 그 결과, 왜곡된 지형도 속에서 한국 학계 특유의 비판 부재와 외국 이론에 대한 종속성, 인문학자의 반과학적 태도라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김 교수는 과학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증명하기 위해 근대과학-계몽주의-낭만주의-논리실증주의로 이어지는 서구 지성사의 상보적 계보를 치밀하게 탐구한다. 계몽주의로 뜨거웠던 17세기로 돌아가 볼테르, 칸트, 마르크스 등을 예로 들며 각자 자신의 과학의 성취를 철학적으로 변환하고자 하거나 자신의 사상을 ‘과학’으로 만들고자 했음을 설명한다. 당시 철학과 과학은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성과를 흡수하면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과학’, ‘삶으로서의 과학’이 공허한 주장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이를 실행해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과학기술정책과 거버넌스 구조를 제안한다. 한국의 상황과 제도적 맥락에 맞는 새로운 과학기술 체제에서부터 이를 이끌 리더십의 요건과 과학기술계 인사 검증 매뉴얼까지 구체적이고 상세한 대안을 보여준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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