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은 봉

두엄 구뎅이 뚫고 호박넝쿨 몇 수 담벼락 타고 오른다 가쁜 줄타기한다 오뉴월 마른 가뭄 뚫고 따가운 햇볕 뚫고

소낙비에 흠씬 몸 적시며 마침내 담벼락 꼭대기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내려다보는 호박넝쿨들 장하구나 노랗게 피워 올리는 호박꽃들 뽀얗게 드러내놓는 젖통들 장하구나

젖은 몸 털며 발 아래 시원히 굽어보면 호박넝쿨들 시원하구나 와락, 현기증 밀려오기도 하는구나

하지만 여기 담벼락 아래 두엄더미 아래 땅으로만 손 뻗으며 납작 몸 젖히는 놈들도 있구나 아프게 몸 비트는 놈들도 있구나

놈들이 피워 올리는 꽃들 참하게 꺼내어놓는 젖통들, 이라고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환하게 빛나지 않으랴

시인은 시골 토담집 풍경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 오뉴월 가뭄과 땡볕을 뚫고 싱싱하고 생명력 넘치는 호박넝쿨을 예찬하고 있는 것이다. 별로 고운 자태도 아니고 향기도 없는 호박꽃에 관능적 표현으로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시인>